한달 전 서울에 갔을 때 피부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청년실업 문제였다. ‘이태백’ ‘88만원 세대’ ‘삶포 세대’ 등 그간 말은 들었지만 멀리 미국에서 한국의 현실을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방문 중 그 세대의 엄마인 친구들의 한숨소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에는 이어지는 화제가 있다. 각자의 고민거리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걱정 근심 불안을 털어놓을 대상으로 오랜 친구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녀들 나이가 서른을 넘어선 지금 친구들의 가장 큰 근심은 ‘자식’이었다. 아이들이 사춘기 때도, 고3 때도, 대학 졸업했을 때도 어느 한 순간 자식걱정 면한 때는 없었지만, 서른 넘어 일자리 없이 기죽어 있는 아이를 보노라면 그 걱정의 깊이가 다르다고 했다.
친구들마다 대개 자녀 중 하나는 ‘애물단지’였다. 5급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가 이제는 7급으로 낮춰 고시원을 들락거리는 아들, 대학 전공을 바꾸며 시간을 허비하다가 몇 년째 취직시험만 보는 아들, 전국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했는데 유학 도중 갑자기 귀국해서는 악기에 손도 대지 않는 딸, 지방대학 싫다고 그만두고 비즈니스 한다며 돈만 날리고는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들 … 나이는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데, 언제 결혼하고 독립할 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친구들은 한숨을 쉬었다. 한 친구는 말했다.
“서른 넘으면 대기업 취직은 어려워. 중소기업으로 가야 하는데 중소기업은 대개 연줄로 뽑아.”
친구는 국영기업 고위직으로 은퇴한 남편을 원망했다. 남편이 인맥을 통해 한번만 도와주면 아들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데 남편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실패에 잔뜩 주눅 든 아들, 그것이 못마땅한 남편, 그런 남편이 섭섭한 친구 - ‘청년백수’는 종종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젊은 층의 취업문제가 심각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2008년 불경기 이후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 3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공무원 1400명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자 일주일 만에 20만명이 몰려든 것이 좋은 예이다.
2011년 기준, 25세 미만의 대학 졸업자들 중 학위에 상응하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절반이 못 된다. 취직을 못했거나 학위와 무관한 단순노동직에 종사하는 케이스가 53.6%에 달한다.
25~34세 연령층 중에서 일자리 없는 사람은 4명 중 한명 꼴. 일자리가 없으니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니 독립할 수가 없어서 성인 자녀들이 부모 집으로 되돌아오는 추세이다. 이런 부메랑 자녀가 지난 연말 기준 14.2%였다. 특히 아들 부메랑이 많아서 이 연령층 중 부모 집에 얹혀사는 남성은 19%에 달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봄에 쓰디 쓴 실패의 잔을 들고 있다. 대학·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학생, 취직 시험에 떨어진 청년 … 상심하고 자책하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가슴이 저리다. 실패의 경험에서 그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해피 포터 시리즈로 세계적 유명작가가 된 J.K. 롤링스가 지난 2008년 하버드 대학 졸업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그때의 연설 제목이 ‘실패의 이로움과 상상의 중요성’이었다.
서른 즈음 롤링스의 인생은 한마디로 바닥이었다. 결혼은 깨지고 일자리도 없는 싱글 맘으로 가난하기가 홈리스 직전 수준이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내가 아는 한 당시 최고의 낙오자는 바로 나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희망의 빛이라고는 안 보이는 터널 같은 현실이 얼마나 지속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처절하게 실패를 하고나니 보이는 게 있더라고 했다. 캄캄할수록 별빛이 빛나듯, 상황이 어두우니 무엇이 중요한 지가 보였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온 정력을 쏟아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딸과 글이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고, 사랑하는 딸이 곁에 있고, 낡은 타자기와 아이디어가 있다” 생각하니 실패의 차가운 바닥이 단단한 반석으로 느껴지면서 무서운 투지가 생겼다고 한다. 실패가 준 선물이었다.
실패와 성공은 ‘한번’의 차이이다. 넘어져서 그대로 주저 않으면 실패, 기어이 한번 더 일어서면 성공에 이른다. 실망하고 좌절한 자녀들이 실패의 잔에서 쓴맛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쓰디 쓴 맛 속에 숨은 특별한 선물을 꼭 챙기기 바란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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