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인구 60만인 도시에, 그것도 ‘남부의 아테네’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문화의 중심지라고 자부하던 도시에 제대로 된 책방이 없어 문학의 사막이 되어 버린 걸 안타까워하던 한 여성이 친구와 동업으로 책방을 열었다. 달걀로 바위를 치듯 어리석고 끝이 빤히 보이는 듯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서점이 들어서면서 대형 체인서점들도 하나 둘 문을 닫는 판에 동네 책방을 연 것이다.
벽돌과 시멘트로 문학의 오아시스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북클럽 모임과 어린이를 위한 책 낭송 이벤트를 열고, 사유의 오아시스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녀는 잘 나가는 작가이기도 하다. 작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무려 15주나 올라있었던 소설 ‘State of Wonder’의 저자인 앤 파쳇이다.
그녀의 소설은 세월의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도 이미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으니 그 깊이와 문학성이 인증된 셈이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을 분석하는 것으로도 훌륭한 학위논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48세의 작은 체구와 환한 미소를 지닌 이 작가는 자신의 펜의 힘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오아시스가 마르지 않게 물줄기를 대주고 있건만 이제는 손으로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오아시스를 판 것이다. 그래서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를 이끄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의 하나로 선정했다.
국가의 파산위기를 놓고 정부를 규탄하는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도 한 여인이 오아시스를 파고 있다. 자신의 조국이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어마어마한 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책방을 운영한다는 이 여인은 자신의 책방이 ‘자유로운 사색의 구역’이 되기를 바란다며 시민들에게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한다. 돌을 던지며 하는 싸움 대신 토론과 사색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 조국을 다시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마우스 클릭 하나면 어떤 지식이나 정보도 알아낼 수 있고, 책을 비롯해 구입 못하는 물건이 없는 이 사이버시대에 책방 하나가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이 두 여인은 이처럼 승산이 보이지 않는 일을 시작했을까?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인데 얼룩덜룩하던 털이 내면이 충실해지면서 어느 순간 빛나는 무늬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렇게 표범이 변하는 과정을 정민의 ‘일침’에서는 또 다른 고사성어 ‘남산현표’를 풀이하면서 한 여인의 입을 통해 이렇게 알려준다:
“도답자란 사람이 있었다. 3년간 질그릇을 구워 팔았다. 명예는 없이 재산만 세 배나 불었다. 그의 아내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남편에게 여러 차례 그러지 말라고 간 했다. 도답자는 들은 체도 않고 부의 축적에만 몰두했다. 5년이 지나 그가 엄청나게 치부해서 백 대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 집안사람들이 소를 잡고 그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도답자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서 울었다. 시어머니는 이 기쁜 날 재수 없이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 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녀를 내쫓았다. 1년이 못되어 도답자는 도둑질한 죄로 죽임을 당했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짙고 기름진 무늬로 문득 변한다. 그 변화가 참으로 눈부시다.”
내슈빌에 책방을 연 작가 앤 파쳇은 몇 년 전에 뉴욕에 있는 자신의 모교, 사라 로렌스 대학 졸업식 기조연설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What now?” 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으라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늘 꾸준히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고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라고.
아테네에서 책방을 하는 여인도, 도답자의 아내도 우리에게 같은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나 돼지처럼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피둥피둥해져 잡아먹히지 말고, “What now?”라는 질문을 하면서 우리 내면의 오아시스를 마르지 않게 해 우리의 얼룩덜룩하게 볼 품 없는 모습을 지혜로운 표범처럼 어느 순간 짙고 빛나는 무늬로 바꾸라는 당부 말이다.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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