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보대학은 작년에 최첨단 기술로 지어진 5,300만 달러짜리 새 건물로 이사를 했다. 어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밖에서 보면 둥글고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이 5층 건물은, 컴퓨터와 미디어랩은 물론, 초대형 모니터와 최신 컴퓨터 장비를 갖춘 ‘디지토리움 (Digitorium-Digital Auditorium)’이라는 새 단어로 명명된 강의실을 자랑한다.
하지만 교직원들이 그보다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건물이 최첨단 자재들인 알루미늄과 두꺼운 유리들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재들 사이사이에 참나무 자재를 적당히 곁들여 최첨단과 자연 자재의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최첨단 자재로만 지어진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멋지고 깔끔한 느낌으로 일을 하지만 점점 딱딱하고 썰렁하게 느껴져 곧 피곤해지고 빨리 나오고 싶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 곁들였을 참나무 자재에 대해, 우리 직원들은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을 안겨주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도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옥상이다. 계단 형으로 만들어진 옥상에는 푸른 잎 식물과 꽃이 자라고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산중턱의 밭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곳은 직원의 출입금지구역이다. 얼마 전, 몇 사람이 그곳에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유기농 채소를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탄원(?)했지만, 너무 높아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긴 해도, 유기농 채소를 키운다는 아이디어는 학교 측의 큰 환영을 받아, 결국 그 건물 앞 잔디밭 일부를 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10평 정도인데, 그 작은 밭을 백여 명 직원이 어떻게 나눌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야채밭’ 얘기만 나오면 모두들 무슨 야채를 어떻게 키운다는 등 신이 나서 떠들었기 때문에 밭 싸움이 날 게 뻔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함께 근무하는 우리 부부는, 각자 땅 받을 욕심을 접고 한 팀이 되는 양보를 결심했다.
지난 주, 밭의 신청을 받는다 하여 놓칠세라 부랴부랴 신청을 했다. 그런데 어제, 신청자가 많지 않아 현 신청자들의 밭이 커지게 된다는 게 아닌가. 알아보니 겨우 서너 명이 신청했다는 것이다. 하도 예상 밖이라 신청하지 않은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마음은 굴뚝같지만 생각해보니 학교일이 워낙 바빠서 손바닥만한 밭이라도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아뿔싸! 그제야 남편과 나도 일단 출근하면 점심시간도 없이 일에 밀려 허둥지둥 하다가 어두워서야 퇴근한다는 생각이 났다. 욕심이 앞서 생각 없이 신청했는데 밭까지 커진다니, 태산 같은 걱정이 생겨버렸다.
문득 두 친구가 생각났다. 한 친구는 근처에 사는 한인으로 잔디밭 마당만 10 에이커인 집에 살고 있는데, 4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사서 0.5 에이커 정도의 잔디밭을 갈아엎었다. 채소밭을 만든다고 신바람이 났었다. 그랬건만, 그 해 그 밭엔 옥수수 알만 몇 백개가 뿌려졌고 늦여름에 잡초 속에서 옥수수 대 7개가 올라왔었다.
그 다음해부턴 아무 것도 심어지지 않은 채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작년엔, 말끔하게 깎인 잔디밭 한 가운데에 마치 실험용 갈대밭 같이 잡초만 무성했다. 부모님이 농사짓는 것을 오래 봤으니 자기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야무진 자신감이 죄였다.
또 한 친구는 독일에서 철학박사를 받고 한국에서 사는데, 3년 전 느닷없이 태백산 줄기를 몇 천평 사더니 농부임을 천명했다. 그 다음해에 놀러가니, 그 높은 곳에 크레인까지 불러 집채보다 큰 구덩이를 파놓고 신나했다. 농사짓다가 더우면 뛰어든다고 수영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같이 밭일을 할 땐 바람이 시원하니 커피 마시고 하자, 경치가 좋으니 좀 구경하다 하자는데, 신선놀음하는 농부였다. 지난 달 편지엔, 허리가 아파서 많이 고생했지만 이젠 제법 농부로서 자리 잡았다고 했다. 글쎄, 그건 이번 여름 내가 가보고 결정해줄 일이겠다.
다음 달부터 밭농사가 시작될 모양인데, 어찌할까나? 직장동료들의 눈이 있으니 잡초 밭만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보경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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