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요즈음처럼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한없이 높기만 했던 아버지의 권위는 지금 어디에서 찾아보아야 할까? 오죽하면 아이가 대학에 잘 가려면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우스갯 소리가 인터넷에 버젓이 떠돌아다니고 있을까? 이러한 농담이 바로 오늘날 우리 아버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망가져 초라해지면서도 내 가정이 행복하다면 이를 감수하겠지만 그러나 자녀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있고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제 자리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심리학자의 주장처럼 아버지의 권위가 서있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연구결과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자리와 역할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남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경사회였고 대가족제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생활 철학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라는 의식이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통의 가정내에서 아버지의 위상은 가히 신성불가침 수준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대단했던 아버지의 권위가 요즈음에 들어서는 완전히 뒤바뀌어서 가정내의 순위경쟁에서도 아들, 딸에 이어 3번으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시골에서 아들네 집을 방문하신 아버지의 순위가 4번인 그 집 강아지에 이어 5번으로 처져 있는 것을 너무 섭섭하게 여기던 아버지가 아들네 집을 떠나면서 “3번아 잘있거라, 5번은 간다”는 편지를 써놓고 말없이 시골 집으로 내려가셨다는 우스갯소리가 그야말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농담이 아니라 진담에 가까운 이야기임을 짐작케 한다.
아버지의 권위에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여러가지 사회문화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통신기기 발달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에는 아버지들에게는 “월급봉투”로 대변되는 강력한 경제권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해 부터인가 봉급이 은행 통장으로 입금되기 시작하면서 출근을 해야하는 남편들이 통장 관리권을 아내에게 위임하게 되면서 부터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가사노동권”이란 용어가 우리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으며 시대적으로는 여성 인력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남편에 대한 호칭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요즈음 젊은 아내들은 남편을 부를 때 으례 “오빠”로 부르고 이에 답하는 남편은 “왜 그래?”라고 답하는 것이 무슨 유행병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호칭만으로 따져보자면 “남매간에 결혼을 하는 셈”이 되는데 이러한 마당에 오빠에게 깍듯이 높임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상황이다. 이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분위기라면 그 아이들은 자기네 아버지를“삼촌”이라고 불러야 된다는 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이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아내는 “오빠”에게 투정을 부린다.
“오빠, 내가 밥상 차리고 설거지나 하려고 결혼한줄 알아?”
남녀평등의 시대라고 해서 부부간에 아예 언어와 행동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젊은 부부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 남편이나 아내를 부를 때“야” 또는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불러대는 상황에서 남편이나 아내의 위상을 이야기 한다든지 아버지의 권위를 찾는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권위가 회초리나 엄한 훈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용돈의 액수가 많고 적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내가 권위가 있음을 과시한다거나 해서 되는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조용하지만 절제된 행동과 신중한 말 한 마디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권위인 것이다.
nifc@inifc.org
이규성
프로그램 디렉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