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쯤 서울에 다녀왔다. 선거 캠페인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는데, 거리에서 선거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유세차량이 자리 잡은 구역을 지날 때 ‘선거’가 확인되었지만, 매서운 꽃샘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거 열기는 유세장을 쫓으며 보도하는 TV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지난 연말 종합편성 채널까지 추가된 탓에 한국의 TV 채널은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많아졌다. 재미삼아 채널을 줄줄이 돌려보던 중 한 방송이 눈길을 끌었다. 모델들이 소위 ‘명품’ 핸드백을 들고 나오면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를 가려내는 시합이었다.
길 건너서도 ‘짝퉁’을 판별해낸다는 족집게 ‘명품 감정사’가 가짜를 가려내 기계로 잘라버리는 매순간 출연진은 숨이 멎을 듯 긴장하고 감탄하고,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다. 진짜와 구분 안되는 최상품 짝퉁이 여지없이 폐기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가짜’는 더 이상 은폐나 수치의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욕망의 대상이었다.
명품 감정에 이은 다음 시합은 성형미인 가려내기였다. 모델들을 앞에 세워두고 그중 성형한 여성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과거사가 한 눈에 다 보인다는 점성술가와 완벽하게 자연스런 성형을 자신하는 성형외과의사의 대결이었다. 점성술가가 성형미인을 찾아내면서 의사가 패배를 했다.
“저 미인이 성형한 건가 안 한건가” 모두가 눈에 불을 켠 그 자리에서 ‘성형’에 대한 비판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성형 결과에 대한 찬탄, 욕망이 넘쳐날 뿐이었다. 성형미인은 더 이상 ‘가짜’ 미인 아닌 그냥 미인일 뿐이고,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의미를 갖지 못했다.
가짜 명품 넘쳐나고 성형광고 넘쳐나는 서울은 한마디로 ‘가짜 권하는 사회’였다. 진짜 같으면서 값싼 짝퉁을 왜 마다하는가, 감쪽같이 미인 될 수 있는 성형을 왜 마다 하는가 - 거리의 멋쟁이 여성들, 지하철 광고판들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전국의 선거 유세장에서는 논문 표절, 제수 성추행, 막말 등 논란에 휩싸인 함량 미달의 ‘짝퉁’ 정치지망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대중 민주주의는 대중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아름다운 제도이지만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다 보니 숭어 뛰면 망둥이, 꼴뚜기 모두 뛰는 부작용이 있다. ‘짝퉁’ 명품도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의 부산물이다. ‘사치품의 민주화’로 초래된 부작용이다.
명품 즉 고가 브랜드들의 역사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8, 19세기 유럽의 장인들이 장시간 꼼꼼한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말 그대로의 명품을 왕족과 귀족들이 사들이면서 패션산업이 번창했다. 명품 비즈니스는 이후 1세기 이상 소규모 가업으로만 이어졌다. 일반 대중과는 하등 상관없는, 상류층만을 위한 틈새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명품이 지금처럼 대중화한 것은 1980년대 후반. 돈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를 사들여 사치품의 ‘민주화’를 선언했다. 고객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중산층의 허영심을 자극할 만큼 비싼, 그러나 욕망을 지레 포기할 만큼 비싸지는 않은 적정 가격대의 대중적 제품을 도입하고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핸드백은 이제 언어와 문화,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선망의 대상이다. 그 선망이 소유로 연결되지 못하는 허전한 마음들을 등에 업고 탄생한 것이 ‘짝퉁’ 시장. 한국에서 짝퉁이 등장한 것은 90년대였다. 역사가 깊어지고 모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번창하다보니 짝퉁은 가짜로서 당당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짜 명품이나 성형은 사회적 욕구의 산물이다. 남들 앞에서 돋보이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그것이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습이든 날씬하고 섹시한 모습이든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대신 브랜드나 성형의 위력으로 ‘무임승차’ 하려는 시도이다. 덕분에 위축되었던 자신감이 살아난다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문제는 사회에 만연한 ‘가짜 불감증’이다. 툭하면 가짜 이력서, 가짜 학위 파문으로 한국사회가 홍역을 치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직이나 도덕, 정의 같은 자명한 가치보다 대중적 인기에만 연연하는 얕은 정치가 이번 총선에서도 ‘짝퉁’ 정치인들 여럿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논문 표절’ ‘제수 성추행’ 꼬리표 후보들도 당선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목혼주(魚目混珠) - 물고기 눈알과 진주를 섞어놓으면 처음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구분이 된다. 물고기 눈알은 썩고 진주는 빛난다. 앞으로 대선까지 8개월, 한국국민들은 물고기 눈알들 사이에서 진주를 가리는 ‘명품 감정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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