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나무 가까이 다가서서 찬찬히 올려본다. 변덕이 심한 삼월의 강풍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꼿꼿이 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바로 어머니의 모습인 듯해 가슴이 울컥해온다. 앞문 바로 앞에 서서 사시사철 우리를 지켜주는 어머니나무다.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가장 먼저 심은 목련 나무, 이제 우리와 함께 한 지도 8년이 다 되어간다.
1995년 7월 1일, 토요일 오후, 어머니가 서울 언니네 댁에서 돌아가셨다. 이른 새벽에 전화를 걸어온 언니는 더는 자제하지 못하겠는지 큰 울음을 터뜨렸다.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언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진정하시고 좀 천천히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요.”
“그래, 그래, 그러마. …….”
“얘, 상수야, 나를 살려놓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나를 살려놓고, 글쎄, 나를 살려놓고 말이다!”
“언니, 어머니가 ……. 언제, 언니?”
“근데, 언니, 언니를 살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극과 극에서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전화를 통하여 우리 자매는 눈이 따갑도록 울었다. 하늘 같은 어머니를 이제 다시는 뵐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고 인생의 무상함과 지난날의 불효에 절망했다.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언니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당시 언니는 삼풍백화점에서 근무하셨는데 이틀 전인 6월 29일 날 아침 어머니가 언니한테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그날일지 이튿날일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틀 이상을 넘기지 못할 것 같으니 직장에서 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와 달라고. 혼자 죽는 게 너무 무섭다는 어머니께 언니는 그리하겠다고 대답하셨다. 6시가 퇴근 시간이지만 그날은 약속대로 3시에 퇴근하신 언니는 어머니의 시중을 마치고 저녁준비를 하시던 중이었다. 전화벨 소리에 전화기를 집어 든 언니에게 언니의 시 사촌 동생이 반가운 환성을 지르며 이해가 안 되는 말을 했다.
“언니, 아, 언니 살아있네!”
영문을 몰라 하는 언니에게 들려준 얘기는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사건이 터졌으니 당장 텔레비전을 켜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 현장은 전쟁터보다 더 비참한 광경이었다. 많은 사람이 다친 건 물론이거니와 쇼핑객과 여러 동료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사였다. 이틀 후인, 7월 1일, 어머니는 언니가 떠드린 마지막 물 한술로 입안을 축이시고 줄줄 눈물 흘리는 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셨다. 언니와 형부, 조카들은 어머니가 딸을 살린 기적이라고 감사를 올렸다.
장례식 하루 전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의 관 앞에서 “어머니!”를 연속해 부르며 밤새 절규했다. 세상에 어머니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와 같은 희생이나 사랑을 결코 다시는 경험할 수 없으리라. 항상 주고서도 더 주고 싶어 하셨고, 기막힌 희생을 하고서도 기꺼이 더 큰 희생을 주저하지 않으셨고, 바보가 되는 아픔을 겪고서도 무조건 용서해 주셨고, 끝없이 용기와 칭찬을 주셨고, 아, 난 이제 어디서 그런 사랑을 다시 맛본단 말인가!
시야가 훤히 트인 언덕 위의 묘지에 어머니를 모신 후, 휑한 가슴을 안고 버지니아로 돌아왔다. 첫 출근 날, 동료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 기대치 않았던 하얀 봉투를 건네받았다. 정이라면 많이 결여된 느낌이 드는 미국인들이 성의껏 모아준 꽤 많은 액수의 조의금이 들어있었다. 동료의 정성을 헛되지 않게 어머니를 추모하는 데 쓰리라 다짐했고 두어 달이나 생각한 끝에 목련 나무를 택했다. 나무 이름도 아름다웠고 봄소식을 향기와 웃음으로 전하는 꽃 역시 맘에 들었다. 메리필드 가든 센터에서 목련 한 그루를 사다 뒷마당에 심었다.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사실 때 집 뒤쪽에 자리한 덱에 앉아 계시는 걸 즐기셨으니 뒷마당의 목련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였다. 그 목련이 얼마나 빠르고 곧게 자라던지, 이듬해 봄엔 가지마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꽃의 수도 배로 느는 듯했다. 어머니를 뵙는 듯해 가슴이 설레었고 꽃이 진 후에도 나무 곁에 다가서서 ‘어머니!’라고 부르며 얘기를 자주 나누었다.
목련을 심은 지 8년이 채 못 되어 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온 첫해 어머니 날, 온 식구가 함께 땅을 넓고 깊게 판 후 좋은 흙과 거름을 듬뿍 넣어 자목련을 바로 문 앞에 심었다. 유난히 큰 꽃송이는 진보라의 바깥 꽃잎과 연보라의 안 꽃잎이 한데 어우러져 화려함과 청초함을 겸했다.
3월 12일, 아직도 달력은 겨울이라는데, 목련 여덟 송이가 봄소식을 전해온다. 설레는 가슴 억누르며 코를 가까이 갖다 대니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지나 머릿속까지 퍼진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가…. 평년이면 꽃망울은 아직 칙칙한 갈색 껍질 속에서 오직 4월을 꿈꾸고 있을 텐데, 온화한 올해의 겨울 날씨에는 목련도 더는 참을 수 없었나 보다. 한데 꽃샘바람이라더니, 60도의 따스한 날씨인데도 3월의 바람은 나무를 마구 흔들어 댄다. 보기에 가여워서 바람막이가 되겠노라며 한참을 서 있었지만, 사실은 목련향기에서 어머니의 체취를 느꼈던 게다. ‘어머니나무, 이렇게 아름답고 고운 향기의 꽃을 수백 년 피워주실 거죠.’ 내일도, 모레도 더 많은 꽃이 피어날 테고, 나는 그 꽃송이를 세며 향기에 취한 채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 맘껏 털어놓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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