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성당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친구가 푸념을 하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토요일에 내가 복사 회합에 조금 늦게 갔더니, 단장 아이가 회합 때마다 읽는 책도 다 읽었고, 퀴즈도 한 아이가 맞췄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어. 그런데, 오늘 요셉이라는 아이가 와서는 안 읽었다고 진실을 얘기해 주는 거야....... 토요일 복사 회합 후에 한 달에 한번 있는 축일 파티에 나온 메뉴는 케이크, 치킨, 떡볶이, 복숭아 푸딩.
우연히 음식물 쓰레기를 보게 됐는데, 아이들이 먹다 버린 것이 생각보다 많아서 속상했어. 거짓말 하는 아이, 음식 귀한 것 모르는 아이......”
친구가 더욱 속상해하는 것은 이 아이들한테 따끔하게 야단도 못 치는 현실이었다. 엄마들한테 항의를 받는다는 것이다. 공부만 잘 하면 만사 오케이의 사고와,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야단도 못 치는 현실이 한 몫 할 것이라는 메일을 주고받으며 최근에 엄마가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봄방학을 이용해 타주에 계신 엄마를 찾아뵈었었는데 4박5일 동안 엄마의 이야기 주머니는 퍼내고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하고, 들은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전하는 재주를 가진 엄마가 해주시는 이야기는 80이 되신 엄마의 일생을 여러 편의 단편소설로 읽는 것 같았다.
벌써 여러 번 들어 외우고 있는 이야기도 있건만 듣고 또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 여섯 자매를 키우며 호랑이 엄마 노릇을 하셨던 이야기를 요즈음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얘, 어떤 줄 아니? 한 번은 넷째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9시까지 온다고 나간 애가 11시가 넘어도 집에 안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 아마 한 시간은 기다렸을 거다- 들어오는 애를 붙잡고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다그쳤더니, 친구들하고 도서실에 있다가 오는 거라고 하지 않겠니. 거짓말이라고 얼굴에 빤히 쓰여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지하실로 데리고 가서 바른대로 말하라고 하는데, 입을 떼지 않아 한참을 두드려줬다. 요즈음 신문에서 부모한테 매 맞고 경찰에 신고해 부모가 잡혀가는 기사가 얼마나 많으냐. 그 때 그 애가 경찰에 신고라도 했으면 어떡할 뻔 했니?”
경찰에 신고를 하다니....... 동생이 어찌 그 매가 사랑의 매라는 걸 몰랐겠는가. 거짓말은 안 통한다는 걸 몸으로 배운 그 날 이후 동생은 거짓말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호랑이 엄마는 다 큰 자식에게도 필요하면 매도 서슴지 않고 드셨고, 불같은 꾸중을 내리셨다.
동시에, 엄마는 자식이 필요로 하면 어디고, 언제고 달려오셨다. 그래서 좀 더 고상하지 못한 엄마의 방법이 싫었지만, 마땅하고도 옳다는 것도 우리는 알았던 것 같다.
여섯 자매 중 십대의 몸살을 가장 심하게 겪었던 그 동생은 이제 틴에이저 딸을 예쁘게 키우면서 잘 살고 있는데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엄마의 호랑이 엄마 기질을 제일 많이 닮은 것 같아. 난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엄마가 우리 길러내신 것 봐. 나도 엄마처럼 저렇게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거든.”
“에구, 다섯 째 옷장은 또 어땠니? 이건 쓰레기통이 따로 없어요. 벗어서 마냥 쌓아 두는 거야. 하루는 그 애 가방을 슬쩍 열어보니,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더라. 울화가 치밀어서 그 애 앞에서 가방을 뒤집어서 그 안에 있는 걸 다 쏟아 버렸어.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 뭐.
그런데 지금 그 애 살림하는 것 좀 봐라. 지난 번 그 애 집에 갔을 때 옷장서랍을 열어봤는데, 아범 속옷이 각이 지게 정리되어있더라. 얼마나 신기하냐. 부엌에서도 그냥 반짝반짝 윤기가 나지 않니.” 엄마는 그게 다 호랑이 엄마의 손길 덕분인 줄 모르시는 걸까.
초등학생 쯤 되면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빤히 안다. 음식을 먹다 버리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해보는 것이다. 아동 인지 발달 심리학자 피아제는 아이들은 경험에 준해 인지의 최소단위인 스키마를 형성해 나가고, 이것이 추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했다.
거짓말을 했을 때 즉각 불같이 떨어지는 호랑이 엄마의 불호령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잘 못 된 행동을 했을 때 묵인해주면 ‘이래도 괜찮은가 보다’ 하는 스키마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요즈음 엄마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의 욕심에 걸맞은 맞춤형 아이로 기르는 ‘타이거 맘’이 아닌, 올바른 아이로 기르는 ‘호랑이 엄마’들은 다 어디 갔을까.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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