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탈이 작품상 후보에 오른 ‘파리의 자정’을 재현한 필름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가수이자 배우로 프랭크 시내트라와 딘 마틴 등으로 구성된 ‘랫팩’의 일원이었던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로 나왔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노련한 코미디언인 크리스탈이 어쩌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인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것은 미국에선 금기로 돼 있다. 비록 흑인이 대통령이긴 하지만 백인위주의 미국에선 아직도 흑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암세포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덴젤 워싱턴과 오프라 윈프리를 공동 인터뷰할 때 “당신들은 인종차별을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워싱턴은 “그렇다”면서 “내가 죽기 전에는 아니 앞으로도 100년이 지나도 치료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워싱턴과 스파이크 리는 흑백 색깔론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사람들로 특히 리는 이에 대해 신경질적일 만큼 과민하다. 리는 지난 2006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미군의 이오지마 전투를 그린 ‘우리 아버지들의 깃발’에 흑인 군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비판했다가 이스트우드로부터 “오, 입 닥쳐”라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할리웃에서 백인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노릇을 한 것은 영화 초창기 때부터 있었던 일로 이들은 대부분 쇼맨 역을 했다. 첫 유성 영화인 ‘재즈 싱어’에서 알 졸슨은 입술은 하얗게 그리고 얼굴에는 검은 칠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다들 뮤지컬 스타들인 프레드 애스테어, 빙 크로스비, 미키 루니, 주디 갈랜드, 및 셜리 템플 등도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나는 요즘도 검은 얼굴의 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TV로 볼 때면 불쾌한 전율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소위 ‘옐로‘인 유색 인종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직도 앤젤리나 졸리가 클레오파트라(현재 제작준비 중)로 나오긴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것이 ‘폴리티칼리 코렉’(politically correct)인 세상이어서 할리웃도 인종과 타문화 묘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예전엔 사정이 달라 백인 배우가 아메리칸 인디언과 동양인 역까지 다 말아 먹었었다. 록 허드슨, 로버트 테일러,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제프 챈들러, 빅터 마추어 및 오드리 헵번 등이 다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들이다. 동양인 노릇을 한 백인 배우들로는 말론 브랜도, 알렉 기네스, 존 웨인, 미키 루니, 폴 뮤니, 캐서린 헵번, 루이즈 레이너, 토니 랜달, 피터 로레 및 데이빗 캐라딘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꼴불견인 사람이 미키 루니다. 그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커다랗고 동그란 렌즈와 뿔테를 한 안경을 쓰고 과장된 뻐드렁니를 한 일본인으로 나와 심한 액센트의 영어를 쓴다. 백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웃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루니의 이런 꼴을 보면 같은 동양인으로서 토사 기운이 나는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의 K팝 가수들이 TV 쇼에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으로 나와 흑인 특유의 제스처를 쓰면서 성대모사를 한 것(사진)을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본 흑인 팬들이 인종차별적 행위라고 비판, 한국 연예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가수들이 별 생각 없이 그랬으리라 생각하고 싶지만 문제는 바로 이 ‘별 생각 없이’라는데 있다. K팝 가수들은 이제 단순히 한국이라는 좁은 땅을 벗어난 전 세계적인 가수들로 발돋움하고 있는 공인들이다. 활동무대가 넓어진 만큼 노래와 춤만 잘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타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수용할 수 있는 사고능력과 감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식과 정보와 연예 및 오락 등이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전세계로 전파되는 이제 우리끼리 놀 때는 지났다.
단일민족(이젠 더 이상 그렇지도 않지만)이라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은 인종차별이 심하고 배타적이다. 이곳에서는 흑인을 ‘깜둥이’ 멕시칸을 ‘멕작’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선 덴젤 워싱턴 등 극소수의 스타를 제외하곤 흑인이 주연하는 영화는 흥행이 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인종차별이란 자기와 다른 색깔에 대한 본능적인 반동 작용이어서 끊임없는 교양과 포용력과 이해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는 고질이다. 흑과 백은 서로 다르지만 체크무늬를 이룰 땐 아름답고 또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색깔 속의 흑과 백’처럼 이질적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모든 색깔은 아름답다.
<박흥진 편집위원> /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