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극성 부모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일이다. 내가 교육위원으로 있는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는 수도인 워싱턴의 근교라서 그런지 몰라도 주민들의 교육수준이 상당히 높다. 가구당 소득 수준도 미국에서 항상 최상급이다. 대체적으로 고학력, 고소득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자녀들에 대한 높은 교육열이다. 부모들의 극성도 대단하다. 타이거 맘이나 헬리콥터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부모들도 많다. 자기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간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사생결단을 낼 듯이 저돌적인 부모들도 제법 있다.
담당 선생님이나 학교장을 통해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은 교육위원에게 연락해 해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읍소의 형태뿐 아니라 비난과 야유를 넘어 협박성의 논조를 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음 선거에서 꼭 기억하겠노라며 투표권을 무기로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려는 부모들도 있음은 물론이다.
숙제의 양, 성적, 급우관계, 학교 식당 음식의 질, 통학버스 연착, 운동팀 가입 실패, 연극이나 뮤지컬에서의 배역, 휴식시간의 부족, 과밀학급, 학교시설 등 극성 부모들의 민원내용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부모들 중에는 변호사, 의사, 대학 교수도 있고, 연구원, 컨설턴트, 군 장교, 연방정부 고급 공무원 등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곳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모두 잘 정돈된 논리로 무장해 교육위원을 꼼짝 못하게 하곤 한다. 이들을 상대키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과 시간적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모들이 훼어팩스 학군이 좋은 교육과 교육환경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의 지적이 정당한 경우가 제법 될 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불평할 때는 하더라도 학교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장을 서서 일하는 열혈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우리 애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그런 부모 중의 하나였다. 그런 점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창피해 하거나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 부모가 적극적으로 자녀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애가 초등학생 때였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 크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자기도 추가 프로젝트를 했는데 점수를 받지 못했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선생님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시한다는 얘기였다. 만약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자기가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분명 혼났을 텐데,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학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라는 것이었다.
일단 교장 선생님에게 연락해 선생님과의 면담 신청을 했다. 교장선생님도 동석하시겠다고 했다. 선생님과의 면담을 통해, 학생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이 당연히 가르쳐야 하나 선생님 또한 학생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교장 선생님이 계신 자리였으니 그 선생님이 참 무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다시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그런 태도를 보지지 않을 것이다 싶어, 나 스스로 무례를 무릅쓰고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큰 애가 중학교 다닐 때였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집 애가 급우들에게 엉덩이를 내어 보이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애는 극구 부인했다. 자기가 아니고 같은 성(last name)을 가진 다른 애가 그랬던 것을 착각한 경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 학교 훈육 담당자가 조사하는 과정 중 자기에게 험한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조사 후 우리 애의 말대로 다른 학생의 행위로 판명되었지만, 자초지종을 모두 듣고 난 후 나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설사 우리 애가 그런 행위를 했다 해도 이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겠으나 학생에게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를 했을 경우 응당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학교장에게 연락해 사과의 필요를 강조했고 학교장은 나의 그러한 요구에 동의해 실수한 훈육 담당관이 정식으로 우리 애에게 사과를 하게 되었다.
위 두 경우 모두 내가 교육위원이 아니었던 때에 일어났던 일이다. 나도 내 애들 보호를 위해서는 그 어느 극성부모 못지 않게 앞뒤를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강심장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고 그로 인해 올 수 있는 스트레스를 감내했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서 혹시 조금 더 현명한 다른 방법을 취할 수는 없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보지만 결코 후회는 안 한다. 위에 언급한 대로 자녀들의 권익보호는 부모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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