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 즈음 친구들과 식당에서 모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몸을 식탁 가운데로 잔뜩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웨이터가 메뉴판을 돌리는 순간 달라지는 것이다.
가운데로 향하던 몸들이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뒤로 활짝 젖혀지는 것인데, 원인은 그 즈음 시작된 노안이었다. 멀찌감치 놓고 봐야 메뉴판의 글자가 보이니 아무리 젊은 패션으로 나이를 감춰도 이때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요즘 친구들 모임에 가보면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이야기를 나누고 주문한 음식을 나눠 먹는 중간 중간 말없이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채팅, 문자 메시지, 이메일, 사진이며 동영상들을 체크하느라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자세가 된다.
비슷한 현상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가족들이 몸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있지만 정신은 제각기 딴 데 가있기 일쑤다. 전화기 하나씩 앞에 놓고 아빠는 뉴스 보고 엄마는 채팅하고 자녀들은 게임하느라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온 가족이 함께 TV를 보는 ‘가족시간’도 이제는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야 가능하던 만남이 인터넷 덕분에 언제 어디에 있든 가능해졌다. 만남이 패스트푸드처럼 흔하고 쉬운 일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70년대만 해도 전화가 없는 집이 많았다. 이야기를 나누려면 만나야 했고 만나려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미리 약속해야 했다. 만남의 기회는 잦지 않았고 그만큼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했다.
지금은 세상 어디에 있는 사람과도 버튼 하나 누르면 즉각 만남이 가능하다. 카카오 토크를 이용하면 서울에 사는 친구든 유럽에 놀러간 자녀든 아무 때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멀리 사는 가족친지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것은 테크놀로지의 고마운 선물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 손안에 든 가상세계에 빠져 눈앞의 가족 친지들과의 대화가 줄어드는 것이다. 펜실베니아의 해리스버그 이공대학에서 관련 실험을 했다. 페이스북 등 모든 소셜네트웍을 1주일간 금지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공통적 경험은 시간여유가 많아지고 별로 교류 없던 옆의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상세계가 이렇게 현실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세계의 위력이 크기 때문이다. 가상세계에서 세상은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알 만큼 좁다(인터넷이 작동되지 않는 오지는 물론 예외이다). 지난 연말 밀란 대학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이다.
연구진은 페이스북 사용자 7억2,100만명을 대상으로 한달 동안 정보가 오고가는 수많은 경로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구상의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한 사람까지는 평균 4.74 다리를 건너면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점심때 식당에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요리사진이 너덧 다리만 건너면 시베리아나 남태평양 섬의 페이스북 사용자에게 전달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친구의 친구가 아는 친구 중에 그 먼 곳에 사는 사람의 친구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하다.
이렇게 연결되는 사람 모두가 페이스북에서는 ‘친구’들이다. 테크놀로지 덕분에 우리는 모두 ‘친구’ 부자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친구’들일까. 최근 브리검 영대학의 한 대학원생이 ‘베스트 프렌즈’라는 주제로 ‘친구’ 관계를 분석했다.
대상은 그의 페이스북 ‘친구’ 451명. 자신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가, 이름만 듣고도 누구인지 아는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가 등의 항목을 적용해 친밀도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그들 ‘친구’ 중 전혀 모르는 사람이 1%, 이름만 듣고는 모르는 사람이 14%. 미국의 어느 주에 사는 지도 모르는 사람은 24%,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55%에 달했다. 많은 ‘친구’들은 사실은 친구가 아니었다.
소셜네트웍을 통한 교류는 일종의 패스트푸드 커뮤니케이션이다. 패스트푸드처럼 편하지만 ‘영양가’가 없다. 패스트푸드가 건강에 해롭듯이 이 역시 진짜 소중한 관계들에 해를 입힐 수가 있다. 매일 저녁 페이스북 챙기느라 가족들과 이야기할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이텍 시대에는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지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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