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도 새로울 것도 없었던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노스탤지어의 무대였다.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 등 총 5개의 오스카를 거머쥔 프랑스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사진)와 촬영상 등 기술부문에서 총 5개의 상을 탄 마틴 스코르세지의 ‘휴고’는 모두 옛 영화에 바치는 헌사이자 그리움이다.
또 각본상을 탄 우디 알렌의 ‘파리의 자정’도 주인공이 시간을 너머 헤밍웨이와 로트렉 등을 만나는 과거 예찬이다. 이런 노스탤지어 무드는 식장을 다니며 참석자들에게 팝콘을 나눠주는 시가렛 걸들에 의해 더욱 무르익어 보였다.
작품상을 탄 ‘아티스트’는 지난 1929년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1차 대전 때 미전투기 조종사들의 무용을 그린 무성영화 ‘윙스’(게리 쿠퍼가 단역 출연)가 작품상을 탄 이래 이 상을 받은 첫 무성영화다.
이번으로 아홉 번째 사회를 맡은 빌리 크리스탈의 맥 빠지는 진행으로 이어진 시상식에서 가장 놀랄 만한 이변(?)은 ‘철의 여인’에서의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 역으로 주연상을 탄 메릴 스트립(62). 이 상은 미배우노조상을 탄 ‘헬프’의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탈 것으로 유력시 됐었다.
지금까지 모두 17번 수상 후보에 올라 오스카 사상 최다 후보 기록자인 스트립은 지난 1980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1983년 ‘소피의 선택’으로 각기 오스카 조연상과 주연상을 탔다.
이번에 데이비스가 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됐던 이유 중 하나도 스트립의 이런 경력 때문이다. 스트립도 이를 잘 안다는 듯이 수상 소감에서 “그들이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미국의 절반이 ‘오, 노. 또 그 여자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웃겼다.
이날 스트립보다 하나 더 많은 총 4개의 오스카 보유자가 된 알렌(76)은 영화의 경쟁을 인정치 않아 시상식에 나오지 않았다. 뉴욕에서 한국인 아내 순이와 TV로 시상식을 봤을는지 궁금하다.
재미있는 것은 수상작들인 ‘아티스트’와 ‘휴고’ 및 ‘파리의 자정’ 등이 모두 프랑스 체취를 갖춘 점. ‘아티스트’는 할리웃 무성영화 얘기지만 프랑스 작품이고 나머지 두 영화는 장소가 모두 파리이다. ‘비브 라 프랑스!’
한국인으로서 관심이 크게 갔던 부문이 외국어 영화상. 예상대로 이란의 ‘이혼’이 탔다. 이란의 베테런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자파르 파나히(반정부 영화 제작혐의로 현재 가택연금 중) 등이 개척한 이란 영화계의 쾌거를 보면서 이제는 할리웃이 알아주는 한국 영화가 오스카상을 탈 날을 기대해 봤다.
‘이혼’은 같은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이스라엘의 ‘후트노트’를 제치고 상을 탔는데 이란의 핵개발을 놓고 요즘 일촉즉발의 관계에 있는 두 나라의 대결이어서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혼’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빅히트 상영 중이다.
이날 시상식의 진짜 승자는 인디 와인스틴사의 주인 하비 와인스틴이다. ‘아티스트’와 ‘철의 여인’ 및 기록 영화상을 탄 고교 풋볼팀 영화 ‘불패자들’ 등이 다 와인스틴사의 작품이다. 작년에 작품상을 탄 ‘킹스 스피치’에 이은 연타석 홈런이다.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상은 오스카상의 선도자로 불린다. 이날 오스카상은 이런 말을 그대로 증명하듯 감독상(우리는 스코르세지에게 주었다)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지난 1월 거행된 골든 글로브상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했다.
시상식은 시르크 뒤 솔레유가 나와 공중 물구나무를 서면서 온갖 재주를 부렸지만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크리스탈의 농담은 김빠진 맥주 같았고 진행 자체가 무기력했다. 당초 사회자로 선정됐던 에디 머피가 나와 닥치는 대로 입심을 자랑했더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 LA타임스는 5,000여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을 상대로 조사, 회원의 94%가 백인, 77%가 남자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비록 옥타비아 스펜서가 ‘헬프’로 여우조연상을 타긴 했지만 할리웃에서 흑인 등 유색인종은 아직까지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발표한 배우들 중 유색인종은 제니퍼 로페스와 크리스 록 단 두 명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비록 상은 못 탔지만 이번에 만화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쿵후 팬더 2’를 감독한 한국계 여류 제니퍼 여는 큰 박수감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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