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봉우리의 잔설(殘雪)이 녹아 내리고 실개천의 살얼음 풀리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뻑꾹 뻑꾹 뻑뻑꾹 ! 뻑꾹새의 울음 소리는 봄이 오는 소리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산비탈 길을 넘어 읍내 학교로 걸어 가면서 듣던, 산등성이 솔밭 사이에서 울던 그 뻐꾸기의 울음 소리가 70년세월이 훨신 지난 지금 까지도 내 귓전에서 울리고 있다. 그래서 봄철이 다가 오면 생각 나는 뻐꾸기의 울음 소리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오는 길목, 보리밭 이랑에 퍼질고 앉아, 먹보리(깜부기)로 계집애들 눈썹을 예쁘게 그려 주고는, 신랑 각시 놀이를 하던 소꼽노리와, 보리밭 속에 숨어서 먹보리로 도깨비 수염을 무섭게 그리고는 후닥닥 뛰어 나와, 친구 들을 놀라게 했던 귀신놀이는 팃기 없는 원초적(原初的)인 연극놀이였고, 그 놀이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사물 거린다.
그 뿐인가 소 먹이고 꼴(풀)빌 시간인데도 집으로 돌아 오지 않고, 보리밭 언저리에서 노닥거리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들이기 위해, ‘보리밭에서 오래 놀면 문둥이가 와서 잡아 간다’ 는 어른들이 꾸며낸 우화(寓話)를, 쌀을 시골 아이들 보다 더 많이 먹고 살면서도, 쌀이 나무에 열린다고 잘못 알고 자란, 서울 아이들은 뻐꾸기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랐고, 또 보리밭 이랑에서의 재미 있는 놀이도 모른다. 그 뿐인가 시골 아이들은 그들 고을에 전해 내려 오는 아름다운 전설(傳說) 한 두가지 쯤은 듣고 자랐지만, 서울 아이들은 그렇지가 못 하다. 그 만큼 서울 아이들의 가슴밭에는 동심의 씨앗이 뿌려 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글쓰는 작가, 특히 좋은 동화나,동시를 쓴 아동문학가의 거의가 시골에서 자랐던 분이라는 점을 두고서도 알 수있다. 왜냐하면, 특히 어린이를 위한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잔재주로 쓰는게 아니라 가슴에서 울어 나오는 애정(愛情)과 동심으로 그려 져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동심! 이는 곧 아름다운 실타래를 푸는 마음이다 !! 내 어릴적에 내 마음 밭에 뿌려진 동심은 훗날 내가 아동극 작가가 되었을때, 여러 가지 모습의 동극 작품으로 열매를 맺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살았던 거제도 관포 마을에 전해 내려 오던 닭섬에 관한 전설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섬마을의 전설’ 이란 동극으로 수록 되었고, 또한 내 머리 속에서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뻐꾸기의 울음 소리는, ‘기남이와 뻐꾸기’ 이란 동극 작품으로 모습을 나타 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기남이 (어쩌면 내 어릴적의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는 꿈 속에서 눈할아버지를 만나, 빨리 봄이 오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눈할아버지는 자기의 힘으로는 봄을 오게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초록색 크레옹 하나를 기남에게 주면서, 나무아저씨에게 가서 그 크레옹으로 나무 둥걸에다 파란 색칠을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기남이는 눈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뒷동산 산자락에 서 있는 나무아저씨에게로 달려가서 나무아저씨의 몸에다 파란 크레옹 색칠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무아저씨가 기남에게 말했습니다. “애야, 내 몸둥걸에다 네 귀를 대어 보라!” 고 말입니다. 나무아저씨 둥걸에다 귀를 대어 본 기남이가 나무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꿀꺽 꿀꺽 물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 말입니다. 그러자 나무아저씨가 기남이에게 말했습니다. “그 소리는 파란 잎을 돋게 하기 위해, 뿌리에서 물줄기가 내 몸 둥걸을 타고 뻗어 올라 가는 소리” 라고 말입니다.
기남이가 늦잠을 자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차츰 차츰 가까이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뻐꾸기 기차가 달려 옵니다/ 산산에 눈 녹이며 달려 옵니다/ 뻑꾹 뻑꾹 뻑뻑꾹 / 기적을 울리며// 뻐꾸기 기차가 달려 옵니다/ 매화꽃 봉우리 트뜨리며 달려 옵니다/ 뻑꾹 뻑꾹 뻑뻑꾹 기적 울리며// 뻐꾸기 기차가 달려 옵니다/ 보리밭 이랑과 들판을 지나/ 뻑꾹 뻑꾹 뻑뻑꾹 기적 울리며// 뻐꾸기 기차가 달려 옵니다/ 잠꾸러기 아이들의 늦잠 깨우려/ 뻑꾹 뻑꾹 뻑뻑꾹 기적 울리며//
차츰 차츰 가까이 들려 오는 노래 소리에, 기남이는 잠에서 깨어 났습니다.
그리고는 사립 밖으로 달려 나갔을 때, 나무 둥걸에서 파란 잎사귀로 피어 난 잎새들과, 둥지에서 깨어 난 산새들이 뻐꾸기 기차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달려 오고 있었습니다. 기남이는 재도 모르게 두팔을 하늘 높이 뻗어 올리며 “이제는 봄이다!” 라고 소리 쳤습니다. 기남이의 외침소리는 산울림이 되어, 봄 동산에 멀리 멀리 울려 퍼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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