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영우 박사님과 개인적으로 깊이 사귀어 온 사이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그 분이 연세대학교에 재학 시절 몇 번 학교 교정에서 그분을 멀리서 본 것뿐이다. 그리고 워싱턴에서도 그 분을 몇 번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 뵈었을 뿐이다.
내가 그 분을 마지막으로 뵙게 된 것은 작년 봄 조지메이슨 대학교에서 한인 미국인 작가 이창래를 초청한 모임을 가졌을 때였다. 그 때도 그저 간단히 인사만 나누었다. 내가 이 분에 대한 추모의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내가 그 분을 잘 알아서도 아니고 평소에 그 분과 친하게 지내서도 아니다.
강영우 박사님은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애인으로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백악관 국가 장애위원을 지냈다. 그리고 그 분이 가정적으로도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신 것이 모두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일이지만 내가 이 추모의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그 분이 자기의 삶에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이 보인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다. 물론 강영우 박사님의 삶은 성공의 삶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그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그가 성취해 온 것은 우리들을 감동 시킨다. 그러나 그분이 췌장암이라는 청천의 벼락같은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가 보인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크나 큰 감명을 받았다.
그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분의 큰 아들은 의사다. 누구보다도 췌장암이 어떤 암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두 이 놀라운 소식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고 슬퍼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강영우 박사님은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그의 삶을 정리하시고 자기에게 찾아올 죽음을 두려움과 슬픔으로가 아니라 환한 웃음으로 그 죽음을 반기는 모습으로 맞이하셨다.
그리고 그 가족 모두가 강영우 박사님과 같은 마음으로 그 분의 죽음을 슬픔과 두려움으로 준비한 것이 아니라 감사와 만족과 화평의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강영우 박사님이 로타리 재단에 기부금을 내시면서 온 가족이 찍은 사진에는 웃음과 화평으로 차 있다. 슬픔과 두려움의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을 한 달 앞두고 온 가족이 이렇게 웃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강영우 박사님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종교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보인 강영우 박사님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우리 전통적 정신과 사고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느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강영우 박사님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노자(老子)나 장자(莊子)의 도교(道敎)적 사상에서 보이는 죽음에 대한 이해와 일치하고 있다.
물론 그분은 기독교 신자로서 자기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또 죽음은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적 사고로서 삶과 죽음을 이해했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전통적 노자와 장자의 도교사상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강영우 박사님은 훌륭한 기독교인이었지만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는 오히려 도교의 자연사상, 즉 사람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질서와 법칙인데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강영우 박사님은 삶에 대한 집착을 과감하게 버리고 죽음을 반가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맞아들인 용기를 보이신 분이다. 강영우 박사님은 그 마지막 고별인사에서도 자기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다는 기쁨을 말하고 있다. 물론 강영우 박사님도 기독교인으로서 부활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은 부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 박사님은 자기가 다시 하나님의 품에 돌아가는, 즉 자연의 품에 돌아가는 기쁨을 더 크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도덕경에서 삶과 죽음이 두 개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은 하나다. 그리고 삶의 완성은 다시 그 근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적 사고를 강영우 박사님은 일찍이 깨치신 분인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강영우 박사님을 도교(道敎)적으로 풀이하는 것을 기독교인이셨던 강영우 박사님이 하늘에서 보신다면 화를 내시기보다는 환한 웃음으로 나의 손을 잡아 주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노영찬
조지메이슨 대학교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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