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 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벚꽃은 모두 졌다. 옆 창으로 보이는 이웃집의 하얀 벚꽃이 먼저 지고 앞 창의 분홍 벚꽃도 졌다. 바람에 휘날리면서 속절없이 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 마다 가슴 한 켠이 아릿했다. 매운 바람에, 감기에, 한꺼번에 들이닥친 힘든 노동에, 친절했던 내과 주치의의 급작스런 사고소식까지 겹쳐 지난 한 달은 사는 것이 그야말로 고달팠다. 운전하는 차 속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재채기로 눈물이 나는 것인지 실컷 울고 싶은 것을 재채기 핑계 삼아 우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책상 자리가 키 순서대로 정해졌다. 하필 나의 짝은 찢어진 눈, 벌어진 앞니, 툭 튀어나온 입술이 영락없이 심술궂은 팥쥐 모습이었다. 책상을 같이 쓰는 밉상의 짝에게 3월 한달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나날이 회색빛 터널 같았던 사춘기였다. 정신적인 여력이 없었다. 요즘이 그 시절 봄날 같다는 엄살 섞인 생각이 들었다.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처럼 떨어져 내릴 때 내 짝꿍은 창밖을 바라보며 이 시 ‘낙화’를 외어 노트에 적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쪽으로 살며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워낙 아무 말없이 새침한 모습으로 일관하니 그 아이는 나에게 말을 붙일 엄두도 못 내었다. 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시원스런 달필로 큼직하게 적어내려간 시가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다.
“시가 참 좋네. 나 좀 베껴도 돼?” 라고 최초로 말을 걸었다. “이 시가 마음에 들면 이 종이 찢어 줄게. 너 가져” 하면서 예쁘게 정서를 한 시를 부욱 찢어서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봄날에 멋진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시가 얼마나 좋은 지도 알게 되었다. 그 시를 입속으로 외우면서 얼어붙은 마음은 조금씩 풀어졌다.
그 후 자세히 보니 가장자리가 치켜 올라간 눈은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보였고, 벌어진 앞니도 귀엽고, 툭 튀어나온 입술은 모성애적인 사랑이 넘쳐 보였다. 짝꿍은 마음 씀씀이도 풍성했다. 외모로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버릇은 잘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여지를 깨닫는 경험이었다.
이별의 아픔을 자연이 선사한 풍경의 아름다움에 대입한 시가 그 시절 아픔을 덜어주는데 크게 한 몫을 하였다. 시의 힘을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젊은 시절 다방의 커피 값과 비슷한 시집을 사 모았고 이민 올 때 동생들에게 나눠주고도 남은 낡은 시집이 집의 책장에 꽂혀있다.
“소설은 노력하면 쓸 수 있지만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예언자로 소명을 받고 태어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삶의 깊은 성찰을 절묘하게 묘사하는 시를 읽을 때면 사는 것이 참으로 기적 같은 느낌이 든다. 생로병사 온갖 고통도 기쁨도 결국은 연합하여 아름다운 생이 되어야 함을 시를 통해 사명처럼 깨닫는다. 병으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 올지라도, 이별의 슬픔이 닥칠지라도, 육신이 낡아 점점 초라한 외양이 될 지라도 결코 인생은 구차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없다는 조용하면서도 힘찬 의지를 주는 것이 바로 시이다. 최초로 즐겨 외웠던 봄날의 ‘낙화’는 지금까지도 좋다. 시대의 예언자들이 쓴 시를 외우는 날에는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고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바람도 잠잠하고 햇살이 따뜻해지니 기침도 멎고 기운이 난다. 포근한 봄날이면 대소쿠리 들고 무작정 나서던 어린 날처럼 들판으로 산으로 쏘다니고 싶다. 마른풀 사이로 삐죽이 나온 쑥을 캐기도 하고 햇살에 데워져 따뜻한 온돌 같은 너럭바위 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절, 그러면 마음도 따라 흘러갔던 그 시절처럼 대자연의 품속에 안기고 싶다. 그리고 가만히 시를 노래하고 싶다.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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