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면서도 정통 교향곡과는 달리 새로운 선율과 음색을 지닌 세자르 프랑크의 유일한 교향곡 D단조를 들을 때마다 선뜻 떠오르는 것이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이다. 둘 다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강인한 흡수력을 지닌 음악으로 다채로운 멜로디와 풍성한 볼륨 그리고 혁신적인 톤을 지녔다.
특히 프랑크의 교향곡과 교향시의 요소를 합성한 듯한 교향곡은 전 3악장을 통해 제1악장의 주제가 계속해 반복되는데 이런 반복을 통해 음악이 재창조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D단조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실제로 한번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지난 17일 오렌지카운티 르네 앤 헨리 시거스트롬 콘서트홀에서 이 곡을 라이브로 들었다.
지난 2010년도 시즌부터 제10대 상임 지휘자로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를 이끌고 있는 리카르도 무티(70·사진)가 이 악단과 함께 남가주를 방문했다. 프리츠 라이너에 이어 CSO를 세계 굴지의 교향악단으로 키워 놓은 조지 솔티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렌지카운티를 첫 방문한지 25년만의 방문이었다. 내가 무티와 121년의 역사를 지닌 CSO 그리고 프랑크의 D단조 교향곡을 보고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폴리 태생의 무티는 그의 세대의 생존하는 마지막 거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음 하나에도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순수파요 완벽주의자다. 필라델피아 사운드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12년간 리드했던 무티는 지난 1986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음악감독직을 역임해 오다 지난 2005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극장 종업원들의 반란으로 불명예 퇴장을 해 당시 큰 화제가 됐었다.
당시 단원들의 반란 이유 중 하나가 유럽 궁정풍 태도를 지닌 오만할 정도로 고고하고 권위적인 무티의 태도와 복잡한 성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이날 무대에 오른 꼿꼿한 자세와 걸음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청중에 대한 인사도 단 한 번으로 끝났는데 마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속 귀족과도 같은 도도하면서도 절제된 품위를 지녔다. 그런 모습이 클래시컬 음악과 잘 어울린다. 물론 앙코르도 없었다.
첫 곡은 오네거의 짧은 교향시 ‘퍼시픽 231’. 이 곡은 기관차를 좋아하는 오네거가 기관차가 고속으로 달리는 추진력을 리듬의 가속화로 묘사한 재미있는 음악이다.
이 날 내가 얻은 큰 기쁨은 뜻 밖에도 프랑크의 교향곡에서라기보다 젊은 미국인 작곡가 메이슨 베이츠(35)의 신곡 ‘대체 에너지’(Alternative Energy)에서였다. ‘에너지 교향곡’이라 불리는 이 곡은 무티에 의해 선임된 CSO의 레지던트 작곡가 베이츠가 작곡해 지난 2월 시카고에서 초연됐는데 고전적 구성과 현대적 문화적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획기적인 곡이었다.
보통 오케스트라가 순회공연을 할 때는 이런 최신 곡은 레퍼터리에 잘 포함시키지 않는데 과감한 선택이다. 이에 대해 무티는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순회공연에서 신곡을 연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오케스트라는 대중에게 새로운 창조적 길을 탐색하려고 노력하는 젊고 진지하고 재능 있는 작곡가들의 최신 성과를 보여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체 에너지’는 타악기를 비중 있고 효과적으로 쓴 풀 오케스트라에 컴퓨터를 사용한 전자음악을 혼성해 음악의 모든 장르를 총동원한 묘사음악 성격을 지닌 일종의 교향시로 에너지가 가득하고 역동적이었다.
19세기 말 포드의 정크야드(크랭크로 자동차 모터를 돌리는 소리가 재치 있게 묘사된다)로 부터 시작해 현재의 시카고와 미래의 핵에너지 나라 중국을 거쳐 2222년의 아이슬랜드레인 포레스트에서 끝나는 전 4악장으로 구성된 곡이다. 인간의 에너지에 대한 집착 끝에 인간 최초의 에너지 원천인 불을 만드는 삶의 보다 간단한 방법에로의 귀환을 그리고 있다.
다분히 동양적인 색채가 깃든 음악으로 클래시컬과 재즈와 힙합과 팝과 테크노 뮤직 등 고전과 현대를 대담하게 접목시킨 경탄을 금치 못할 음악이다. 무티는 열이 나서 신나게 지휘를 했는데 연주가 끝나자 옆에 앉은 아저씨가 “미친 용감한 젊은이”라고 칭찬인지 비판인지를 모를 소리를 했다. 베이츠는 대성할 음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프랑크의 교향곡이 연주됐는데 무티의 남부 이탈리아적 낭만과 따스함이 CSO의 근육질적인 강건한 음색과 잘 어우러진 연주였다. 무티의 지휘는 기품을 갖춘 고전미가 가득했다. 특히 음을 이끌어내고 다듬는 그의 왼손 제스처는 가히 창조주의 손놀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며 또 민감하고 위엄이 있었다.
거머쥐고 걷어 올리고 내리 누르고 독려하고 재촉하며 또 다독이고 어루만지면서 음들을 집어내고 배합시키는 다변한 표현력의 지휘였다. 마술사가 맨손에서 갖가지 색깔의 꽃을 피워내는 듯한 마법적인 지휘로 멋과 함께 위풍당당하고 아름다웠다. 브라보 마에스트로 무티!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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