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타이완의 지밍 린은 두 가지 꿈을 안고 미국으로 왔다. 박사학위를 받는 것 그리고 NBA 경기를 원 없이 보는 것이었다. 타이완 TV에 가끔 나오는 미국 농구경기를 보면서 그는 왠지 모르게 농구에 빨려들곤 했다고 한다.
퍼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린 박사는 LA에서 첫 직장을 잡았다. 근무시간은 길고 일은 고됐다. 스트레스 해소할 여가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떠오른 것이 “농구를 하자”였다. 문제는 농구공을 잡아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박사’ 답게 연구를 시작했다. NBA 스타들의 경기 녹화 테이프를 보고 또 보며 연구논문 쓰듯 동작을 분석했다.
그렇게 몇 년 선수들의 동작을 흉내 내면서 독학으로 농구를 배우고 난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아들 녀석들이 태어나면 농구를 시켜야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꿈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는 그냥 NBA가 아닌 아들이 뛰는 NBA 경기를 원 없이 보고 있다. 2012년 2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 제레미 린(23)이 그의 아들이다.
‘돌풍’ ‘열풍’으로 소개되는 린의 인기는 화산이 터지듯 폭발적이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던 그의 이름이 매일 수도 없이 매스컴에 등장한다. 스포츠 뉴스의 경계를 넘어 온갖 칼럼니스트들이 칼럼을 내놓고 뉴욕타임스는 뉴욕 닉스 소속인 그에 관해 사설까지 썼다.
입 있는 사람마다 입에 거품을 물고 그를 칭찬하는 ‘린 광기’ 다시 말해 ‘린새니티’를 보노라면 의아해진다. 이렇게 대단한 ‘보물’을 농구계는 왜 이제껏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프로 농구선수로서 그가 갖는 희귀성이 일종의 차단막 역할을 한 것 같다. 선입관과 편견이 공정한 평가의 시선을 차단했을 것이다.
제레미 린은 농구선수로서 일종의 ‘천연기념물’이다. 첫째는 아시안이라는 점. NBA에서 아시안 선수는 현재 그가 유일하다. 둘째는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점. 하버드 출신 NBA 선수는 1953년 시즌에 활동한 에드 스미스 이후 그가 처음이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남성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머리 좋고 성실 하지만, 박력 없고 수동적이며 왜소한 체격에 성적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아시안 남성에 따라붙는 선입관이다. 거기에 하버드의 공부벌레 이미지까지 합쳐지면 종횡무진 폭풍 같은 기세로 구장을 뛰는 NBA 선수 이미지와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린새니티’에 젊은 아시안 남성들이 특히 환호하는 데는 린의 카리스마 넘치는 경기로 아시안 남성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리라는 기대도 한몫을 한다.
린이 ‘천연기념물’인 세 번째 사실은 그가 중국계(타이완) 1세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농구를 한다는 점이다. 하버드 경제학과를 나온 자녀가 운동선수가 된다고 하면 찬성할 부모, 특히 이민1세 아시안 부모는 거의 없다. “운동은 그만큼 즐긴 것으로 됐고, 이제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야지 …”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자녀의 장래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다.
1년 전에도 미국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중국계 2세가 있었다. 예일대 법대의 에이미 추아 교수였다. 10대의 두 딸을 키운 경험을 토대로 ‘호랑이 엄마의 승전가’라는 책을 펴낸 후 ‘중국 엄마 대 미국 엄마’라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엄마’ 양육법은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는 교육법. 반면 ‘중국 엄마’ 양육법은 자녀를 호랑이처럼 무섭게 닦달해 실력을 최대한 계발하도록 훈련하는 교육법이다. 당장은 아이가 괴롭지만 결과적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성공궤도에 진입하게 될 테니 ‘중국 엄마’ 식이 더 나은 양육법이라고 추아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딸이 수학시험에서 B를 받자 하룻저녁에 2000개 문제를 풀게 하는 등 경험담을 털어 놓아 ‘아동학대’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한인부모들이 비슷하게 자녀들을 기르고 있다. 소수계 이민자로서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으려면 공부 잘 해서 전문직 갖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게 자라 전문직에 진출한 20대 30대의 우리 2세들이 요즘 제레미 린을 부러워하고 있다. ‘호랑이 엄마’들의 기세에 눌려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던 길을 버리고 안전한 전문직을 택한 케이스들이다.
안전한 선택은 안전해서 좋지만 한계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정상은 열정을 가진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 아버지의 박수를 받으며 농구장을 펄펄 나는 제레미 린이 본보기이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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