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상당히 매력적인 도시이다. 넘치는 생동감 그 자체가 삶에 활력이 된다. 우리 집 애들이 어렸을 때 애들을 데리고 뉴욕을 자주 다녀왔다. 토요일 당일치기도 여러 번 했었다.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해 맨하탄에서 점심으로 설렁탕을 먹고 센트럴파크에 가서 산책을 하거나 브로드웨이 쇼를 보기도 했다. 브롱스의 동물원을 간다든지 더운 한 여름에는 롱아일랜드 비치에 가서 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플러싱에서 좋아하는 만두를 저녁으로 먹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훨씬 넘었다.
그런데 뉴욕의 프로 운동 팀을 응원해 본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싫어 했다. 엄청난 자금력을 무기로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가는 것이 왠지 맘에 안들었다. 내가 뉴욕 팀들을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은 대학 때였다. 나는 당시 다니던 대학이 위치한 보스톤의 야구팀 레드삭스의 팬이었다.
1977년도 월드시리즈에서 레드삭스의 라이벌인 양키스가 6번째 게임에서 레지 잭슨 선수의 한 게임 세개의 홈런 기록과 함께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다.
그 때 너무 의기양양한 양키스 선수들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양키스의 적이 되게 만들었다. 그 다음해는 더 심했다. 7월까지만 해도 레드삭스에 14게임 이상 뒤쳐졌었는데 꾸준히 추격해 오더니 급기야 9월초에는 ‘보스톤 대학살’이라고 불리게 된 레드삭스와의 4연전을 총 득점 42대9로 모두 이기면서 레드삭스와 공동선두로 정기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진출 결정전에서 5대4로 레드삭스에 이겼고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었다.
올해의 수퍼보울에서 뉴욕 자이언츠가 이겼을 때에도 왠지 씁쓸했다. 보스톤 지역 팀인 패트리옷 한테 이긴 것도 맘에 안들었지만, 워싱턴 레드 스킨스에게 두 번 씩이나 지고서도 수퍼보울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야구나 풋볼팀 뿐만아니라 아이스하키 팀도 싫어했고, 하여튼 뉴욕 팀이라면 모두 싫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지난 2주 사이에 완전히 바뀌었다. 뉴욕 농구팀 닉스의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농구라면 래리 버드가 한참 활약하던 시절부터 좋아 했던 보스톤 셀틱스나 워싱턴 홈팀인 위저즈여야하는데 이제는 뉴욕 닉스를 응원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모두가 다름 아닌 제레미 린 때문이다.
내 첫째 아이의 친구이기도 한 제레미 린은 대만에서 이민 온 부모님을 둔 캘리포니아 태생 대만계 미국인이다. 아마 미국 태생으로는 최초로 부모 모두가 동양인인 프로농구 선수일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캘리포니아 주 최우수 선수로 인정받으면서도 동양인 선수에 대한 농구계의 뿌리 깊은 선입견 때문에 농구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이 없었다. 결국 농구 장학금이 없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때도 역시 아이비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로 활약했지만, 졸업 후에 그 어느 프로팀으로부터도 드래프트가 되지 않았다.
결국 제레미 린은 우여곡절 끝에 샌프란시스코 골든 스테이트에 자유계약선수로 겨우 입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전의 기회도 별로 없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여러 번 겪다가 휴스톤으로 방출되었다. 휴스톤 팀도 지난해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 방출을 했고 그 후 뉴욕 닉스가 여러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꾸려고 계약을 맺었다.
닉스에서도 마이너리그로 보내지기도 했는데 두 주전 토요일에 처음으로 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제레미 린은 자신의 이름을 농구 역사의 장에 오래도록 남길 스토리를 쓰고 만다. 벤치후보로 있다가 중간에 투입되어 25득점에 7 어시스트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프로농구에 들어와 처음으로 주전선수로 출전한 이틀 후의 게임에서는 28점 득점에 8어시스트, 그 다음 게임에서는 더블-더블인 23 득점에 10 어시스트의 실력을 보였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했던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와의 게임에서는 자그마치 38점을 득점하며 농구계를 경악시켰다. 그 후에도 계속 거의 매 게임마다 20점 이상 득점을 해가며 뉴욕 닉스가 엊그제까지 7 연승 가도를 달리는데 최고의 공헌을 한다.
물론 나는 제레미 린이 첫째 아이의 친구이고, 나와 같은 기독교인이며, 나의 모교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응원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수많은 동양계 청년들의 흥분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서, 동양인에게는 오르기 힘든 높은 산처럼 보였던 곳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믿기 힘든 현실에 나 스스로도 그 감격을 주체하기 어렵다. 이러한 흥분이 나의 두 아들들을 비롯한 모든 동양계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자극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제레미 린이 보여준 것처럼 어려움을 겪는 과정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준비해야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그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의 두 게임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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