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푸른 정도가 딱 좋다. 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가 딱 좋다. 아버지는, 무서운 정도가 딱 좋다. 어머니는, 많이 자상한 정도가 딱 좋다. 친구는, 귀찮은 정도가 딱 좋다. 청춘은, 바보스러운 정도가 딱 좋다. 답장은, 조금 기다리는 정도가 딱 좋다. 거짓말은, 서툰 정도가 딱 좋다. 고마움은, 많은 정도가 딱 좋다. TV는 뒹굴면서 보는 정도가 딱 좋다.”
그저 내가 좋으면 바로 그것이 딱 좋은 정도라고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이 ‘딱 좋은 정도’의 문구는 일본 후지TV 기업광고 카피이다.
얼마 전에 아들, 딸 내외 그리고 네 명의 손자 손녀들과 함께 바닷가로 휴가를 다녀온 대모님은, 어린 손자 손녀들이 바닷물에서 지칠 줄 모르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우편함에서 소포를 꺼내 들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따끈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도 어김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 후지TV 기업광고는 이 같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서 ‘딱 좋은 정도’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이다. 모두 상대적인 기준이다. 결국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족, 이 모든 것이 내 기준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느 정도 있으면 딱 좋고 명예는 어느 정도 있으면 딱 좋을까? 먹고 살 정도?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 글쎄, 어딘지 시원하지가 않다. 그런데 이 답을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을 신문을 통해서 만났다.
시카고의 ‘찰리 트로터스’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주방장인 찰리 트로터가 바로 그 인물이다. 세계 각국의 미식가들이 ‘당대 요리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 들른다는 레스토랑.
2년 만에 ‘미국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받았고, 수많은 시카고 출신 유명 요리사들의 산실 역할을 한 곳. 그 자신도 요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10차례나 수상했고 요리책을 14권이나 출간했으며, 또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요리프로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3개월(3일이 아니라) 전에 예약을 해야 할 만큼 잘되는 이 레스토랑을 25주년 기념이 되는 날인 오는 8월17일 문을 닫는다고 찰리 트로터 자신이 발표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니 벌써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어 194일 7시간 42분 32초가 남았다고 알리고 있었다.
이렇게 잘 되는 레스토랑을 왜 닫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5년간 ‘찰리 트로터스’에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인생에는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그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로 대학원에서 철학과 정치이론을 공부할 계획을 밝혔다. 시카고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원들에서 이미 입학허가도 받아놓은 상태라니, 하루아침에 내린 결정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본격적으로 깊이 있게 전공을 파고 들어가 보겠다는 그의 계획을 보며, 그래서 요리분야에서도 성공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는 파고드는 타입인 것 같다. 평소에 ‘excellence’ 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그는 직원들에게 늘 이‘우수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His Excellence Program’을 만들어 몇 년 째 매주 두세 번, 열악한 환경의 고등학생들을 초대해 코스로 나오는 정식 요리를 대접하며 자신을 비롯한 요리사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excellence’를 추구하는지에 대해 강의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일년에 한번쯤 그런 행사로 언론의 주목을 끌어 마케팅 전략으로 쓰는 사업체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몇 년 째 꾸준히, 그것도 매주,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 그렇게 해왔다니, 레스토랑을 알리기 위한 행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이 식사를 하려면 적어도 300 달러가 든다고 하는데, 별실까지 마련해놓고 꿈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의 정수’를 맛보게 해주고 좋은 강의까지 해주었다니, 초대되었던 학생들은 그 하룻저녁의 경험으로 평생 우수성과 베풂을 좌우명으로 간직하게 되지 않을까? 아마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돈, 명예, 그리고 인생의 한 막을 내리는 시기로 ‘딱 좋은 정도’인가 보다.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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