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이란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을 찌거나 삶거나 익힐 때에 흠씬 열을 가한 뒤에 그대로 얼마 쯤 내버려 두어서 속속들이 푹 익게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낱말이기는 하나 요즈음 같이 빠르고 바쁜 일상생활에서 뜸 들인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활도 이런 추세에 맞추어서 살아가다보니 인스턴트 식품을 찾고 조금이라도 더 빠른 것을 찾는 것이 어느 사이에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이처럼 ‘빠름’의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서도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면서 주문을 하고는 종업원이 미쳐 뒤 돌아 서기도 전에 “빨리”를 외친다. 시대 변화가 빠르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우리의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도와주는 모든 첨단기기들 역시 빠르기를 더해가고 있다. 전자통신 수단이 그렇고 교통수단도 빠르기를 더해 가고 있고 더 안락하게를 강조하고 있다. 컴퓨터를 쓰는 사람은 늙으나 젊으나 속도가 빠른 것을 찾고 있으며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빨리” 가려고 애를 쓴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고 그렇게 외쳐대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빨리 가려고 가속 페달을 밟아 댄다. 한국 사람들이 특히 휴대전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아마 모르긴 해도 “빨리 빨리”를 강조하는 우리 민족의 속성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빠름’을 강조하는 우리 민족의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과학문명의 발달과 첨단기기의 발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삶에 이득을 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TV와 컴퓨터 그리고 휴대전화가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오면서 부터 가정에서는 부모-자녀 간에 대화가 사라진지 이 미 오래되었고 형제간, 친구간은 물론이고 부부간에도 휴대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주고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얼굴을 마주 쳐다보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하기는 하나 기계를 통해서 전해지는 대화속에 사람 냄새가 나는 정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엄마 아빠의 음성으로 아이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위치추적 장치로 어디에 가 있는지를 확인하려 들고 엄마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 보다는 렌지에서 따듯하게 데워서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이 맛도 있고 멋도 더 있어 보인다. 이런 분위기에서 뜸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에게서 따돌림 받기 십상이다. 자연히 현대인들은 그런 문화에 동화되어 가게 마련이고 또 은연중에 그런 문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처럼 슬금 슬금 젖어들어 간 첨단문화의 편리한 유혹에 젖어서 이제는 그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해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식음을 전폐하고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목숨을 잃었다는 신문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기도 하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 받느라 몹시 바쁘다는 여학생들의 이야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첨단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 유행을 따라가지 못해 심신이 거부반응을 일으켜 우울증에 빠지는 기계우울증(techno stress) 증세를 나타내거나 기계공포증(Techno phobia)에 걸려 고생을 하는 부작용도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우리가 되 찾아서 이어가야 할 것이 바로 뜸과 여유의 문화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고 급하게 먹는 냉수에 체한다는 말도 있다. 잠시라도 여유를 찾아서 부모-자녀간에 대화 시간을 갖고 부부간에도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막혔던 감정의 통로가 트이고 감정의 골이 사라지기도 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가정의 따뜻함이 절로 느껴지게 될 것이다. iPod 화면에 찍혀있는 화려한 가을 국화는 아름답기는 하나 향기도 없고 감촉도 없는 한 장의 사진일 뿐이지만 꽃밭에서 만나는 가을 국화는 자연의 신비스러움과 함께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비싸고 좋은 첨단기기가 좋고 일을 하는데 효과적인 도구로 쓰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도구들이 엄마, 아빠의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첨단과학과 기술이 부부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생활의 방편인 도구일 뿐이다.
행주치마에 물 묻은 손을 씻으시면서 “뜸이 들어야지…” 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규성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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