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인근의 부촌, 팔로스버디스에서 지난주 사건이 터졌다. 팔로스버디스 고등학교 11학년 학생 3명이 컴퓨터 해킹으로 성적을 조작하고, 시험문제를 훔쳐내 팔아온 혐의로 체포되었다. 모두가 한인 학생들, 공부 잘 하는 우등생들이었다.
문제의 학생들이 한밤중에 학교로 숨어들어가 교사들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교사들 책상에서 시험문제를 훔쳐낸 지는 여러 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학교 측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한 학생의 귀띔이 있고 나서야 겨우 부정행위의 꼬리를 잡았다.
AP와 아너스 클래스를 듣는 이 학생들은 그만큼 영리했다. 4개 과목 성적을 온라인으로 조작했지만 교사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80 몇점을 모두 90점으로 바꿨다. 점수로는 몇점 차이 아니지만 성적표에 나오는 성적은 B 대신 A가 된 것이다.
이 ‘우등생’들은 시험문제 훔쳐서 미리 공부하고, 해킹으로 성적 조작함으로써 성적관리 확실하게 하고, 한편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시험문제 팔고 성적 고쳐주는 ‘장사’까지 하다가 적발되었다. 집안 잘 살고 공부 잘 하는, 아쉬울 것 없는 아이들이 제 무덤을 파고 말았다.
뉴스가 보도되자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는 의구심을 갖는다. 아이가 우등생이라도 안심할 수 없는 건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시험부정 행위를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등생들이 오히려 더 커닝할 위험이 높다. 보통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커닝을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성적 나쁜 학생들은 대개 학업자체에 관심이 없다.
밴나이스 고등학교에서 오래 카운슬러로 일한 김순진 박사의 경험으로 보면 시험부정으로 말썽이 나는 건 주로 매그닛 프로그램 학생들이다. 기필코 A를 받아서 명문대학에 가야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커닝의 유혹이 싹트는 것이다.
아울러 부모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의 학교에 커닝이 너무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된 미전국 고교생 4만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그전 1년 동안 시험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는 학생은 59%에 달했다. 10명 중 6명은 옆 학생의 답을 훔쳐보거나, 커닝 쪽지를 이용하거나, 시험문제를 사전 입수하거나, 시험시간이 다른 학생과 모의를 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심하게는 커닝하는 학생의 비율이 80%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남가주, 라호야 고등학교에서 과거 학생회장을 했던 한 학생도 말했다.
“고등학교 과정을 커닝으로 마치는 아이들도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커닝을 해요. ‘모든 정답을 아는’ 학생 같지만 알고 보면 ‘모든 정답 커닝 쪽지를 가진’ 경우들이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 고교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아이비리그에 들어간 한 한인학생은 집안에서 ‘가문의 영광’으로 통한다. 하지만 고교동창들 사이에는 다른 별명이 있다. ‘커닝의 귀재’이다.
우등생들이 왜 이렇게 커닝을 할까? 가장 큰 원인은 치열한 경쟁이다. 김순진 박사의 분석이다.
“어느 해 졸업생 600명 중 1등부터 30등까지의 성적을 뽑아 보았어요. 1등과 30등의 GPA 차이가 소수점 이하로 나오더군요. 그러니 그 사이의 등수는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미세한 점수 차이로 등수가 오르내리고, 제한된 명문대 합격 자리를 두고 ‘저 친구를 밀어내야 내가 들어가는 것’이 우등생들의 현실이다. 밤샘 공부에서부터 편법까지 모든 가능한 방법이 동원된다.
게다가 커닝이 너무 만연해 ‘누구나 하는 것’이란 생각이 퍼져있다 보니 부정행위에 대한 죄책감도 별로 없다. “남들은 커닝해서 좋은 성적 받고 좋은 대학 가는데, 혼자 정직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이다.
미국 사회의 심각한 화이트칼라 범죄는 여기서 시작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교실에서 커닝하는 ‘바늘’ 도둑을 내버려 두면 결국 월스트릿에서 금융범죄 저지르는 ‘소’ 도둑으로 자라고 말 것이다. 그들이 만든 금융위기로 지금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사회!’라는 말이 한국에서 한동안 유행했었다. 1등 즉 ‘1%’만 잘 사는 부의 편중이 1등에 대한 집착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부모들은 고민이 많다.
분명한 사실은 부정행위를 통한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피 말리는 성공보다는 건강하고 행복한, 그래서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아이들을 키웠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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