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정월이 훌쩍 날아가 버렸다. 지금쯤 새해 각오가 작심삼일로 무너져 나약한 의지를 자책하는 사람들이 적잖을 듯 싶다. 이중에는 작심삼일이 연중행사가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습관은 고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콜라와 정을 떼기까지 나도 여러 번 작심삼일을 경험하고 자존심을 심히 구겼다. 상대를 제대로 알고 맞붙어야 승산이 있는데 콜라를 흔한 표현대로 ‘물로 만만하게 보고’ 도전한 탓이었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았는가. 콜라에 빠진 것도 중독이라는 사실과 작심삼일에는 심리적 요인과 생물학적 이유가 얽혀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다.
미국에 오길 백번 잘했구나 하며 콜라를 물 대신 마셔댔다. 20여년을 신나게 마셔대던 어느 날, 임신한 듯 볼록 튀어 나온 뱃살에 눈길이 갔다. 한국을 떠날 때 28인치의 날씬했던 허리가 33인치에 육박하고 있었다. 신나게 먹어댄 게 숱하지만 나는 콜라를 주범으로 찍었다. 그런데 목젖을 짜릿하게 톡톡 간질여주며 넘어가는 시원하고 달콤한 콜라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확실한 보장도 없는 미래의 홀쭉한 배를 기약하며 즉각적 보상을 약속하는 콜라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생명과학은 최근까지 수많은 연구논문을 통해 유혹을 교사하는 인체 내 화학물질의 존재와 그 역할을 상세히 밝혀냈다. 이런 사실에 눈이 어두운 채 콜라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하고 과대평가된 내 의지를 믿고 대들었다가 콜라의 유혹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중독으로 이끄는 인체 내 화학물질이 ‘신이 선사한 마약’이란 별칭이 붙은 ‘도파민’이다. 뇌신경 세포의 흥분전달 물질인 도파민은 순간의 쾌감을 미끼로 뇌를 길들임으로써 인간을 습관의 노예로 만든다. 그래서 습관을 깨기가 힘든 것이다. 나쁜 습관에서 빠져나오려면 유혹을 떨쳐버렸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뇌가 기억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도파민이 계속 보상하도록 길들여질 때까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도파민은 좋은 습관 형성에도 필수불가결한 물질이다. 나약한 의지 타령만 하다가는 의지의 덫에 갇히고 만다. 의지는 유전적이 아니며 훈련을 통해 강화시킬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다.
도전할 습관의 실체를 파악한 뒤 성공을 위해 기억해두어야 할 생물학 용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자극의 역치’인데 생물체가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강도를 나타내는 수치를 말한다.
이 용어는 인체에 적용해도 들어맞는 것 같다. 습관을 깨기 위한 노력에도 ‘자극의 역치’ 처럼 역치가 있기 때문이다. 역치 이하의 자극에는 생물체가 반응하지 않듯 역치에 미치지 못한 노력은 실패, 역치를 넘어서면 성공에 이르게 된다. 삶이란 알려지지 않은 역치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역치에 도전했던 경험담 하나. 네다섯 문장의 성경 구절을 매주 암송해야 하는 6개월 코스의 주말 성경 클래스에 등록을 했었다. 암송이라면 질색하는 나는 암송 포기를 선언하고 클래스를 시작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척척 하는 성경 암송을 단한 번도 하지 않고 드디어 마지막 수업을 맞게 되었다. 나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수업의 성경 구절을 외우기로 작심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지막 수업의 성경 구절이 평소의 두 배 이상 길었다.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한 태만을 속죄하려고 헉헉대며 남몰래 뫼를 오르기 시작했다. 읽고, 쓰고, 눈 감고 외우기를 거듭했다. 두 번, 세 번, 네 번…….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흘렀다. 눈 감으면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작심을 해놓고 후회가 막급했다.
둘째 날, 첫날처럼 반복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 막판에 눈 감으면 글씨가 어른거렸다. 희망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셋째 날, 또 되풀이했다. 드디어 눈 감고 입이 열렸다. 기억력이 한창 좋았을 때에 비하면 열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됐을 터이지만 그래도 기뻤다. 마지막 수업 때 대표로 성경구절을 암송했다.
습관을 바꾸려면 각오가 중요하다. 각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실천이요, 실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속이다. 역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실패란 없다.
황시엽/ W.A.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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