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공정’ 혹은 ‘공정성’이 글로벌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 국정 연설에서 ‘공정(fairness)’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일명 ‘버핏세(Buffett Rule)’라 불리는 부자 증세를 제안했다. 버핏 같은 대재벌과 그보다 임금이 적은 비서실의 직원이 같은 비율의 소득세를 낸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역시 지난 1월 영국의 한 중고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목적과 빌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목표 역시 사회의 ‘공정성’을 높이는데 있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여당과 야당에서도 공정성을 강조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공정무역, 공정사회, 공정보도 등등 공정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복지사회보다 공정사회’가 더 먼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만큼 공정이 강조되고 있다.
‘공정(公正)’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가치, 선악, 우열, 시비 등을 판단할 때에 일이나 행동에 치우침이 없고(impartial) 떳떳하며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 요즘 들어 공정 혹은 공정성의 개념이 주목받는 다는 것은 그 동안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사회가 매우 불공정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혜, 담합, 차별, 편법, 반칙, 불공정 거래 등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모습은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 모든 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불공정을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그 것을 당연한 사회적 관행으로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동안 불공정 사회의 어두운 관행 속에서 손해를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의 반대편에 몸담은 이른바 ‘힘 있고 특별한 사람’이 누리는 차별적 특혜나 특권을 무의식적으로 부러워하며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불공정이 만연한 어두운 그늘에서 다행히 세상이 다시 공정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공정한 사회’를 외치기 시작했다. ‘공정사회란 무엇인가’를 쓴 복잡계 연구가인 피터 코닝(Peter Corning)은 지난 150년간 인류사회를 지배해 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모두 ‘불공정’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며 ‘공정한 사회’를 주장한다. 매우 공감 가는 주장이다.
이제 공정은 사회의 이상적 화두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움직여 나가는 실질적 힘(force)과 기준(rule)이 되어야 한다. 공정의 기준이 우리 사회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이는 ‘안녕(安寧)’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듯이, 이제는 ‘공정’이 우리 모두의 마음과 세상에 자리 잡아야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서로 만나면 ‘안녕’을 묻는다. “안녕하십니까?” 서로에게 몸과 마음에 ‘안녕’이 있는지 묻는다.
이제는 만나면 ‘공정(fairness)’을 물어야 할 때이다. “당신은 공정하십니까?”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주어진 일을 하면서 자주 자신의 마음과 삶의 모습에 ‘공정’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독점적 대우나 특별한 우대 같은 특혜를 바라지는 않는지, 그리고 모든 사람(人)을 공정하게 대하는지, 모든 일(事)을 공평하게 처리하는지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개인과 사회 속에서 ‘공정의 가치’를 높여야 하고,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의 기준’을 성찰하고 정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공정은 보이지 않는 구조적 불공정을 야기시키는 기계적 공정이거나 기만적 공정 혹은 산술적 공정이나 무한경쟁을 위한 공정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득권자를 포함하여 차등적 원리에 기초한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배려를 담아내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공정이어야 한다.
사실 공정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덕목이며 동시에 모든 종교인들의 신앙과 종교적 삶의 내용이어야 한다. 소박하게 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정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공정은 모든 사람들은 다 소중하며, 사랑받는 존재라는 종교적 깨달음의 실천인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종, 국적, 종교, 언어, 장애 유무를 불문하고 차별대우 없이 대하는 것이 곧 공정이다.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격적 존재임을 깨닫는 마음이 공정의 시작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자신과 꿈과 비전을 실현할 기회를 보장해 주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공정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공정의 나눔이요 실천이다.
늘 마음에 ‘공정’의 소중함을 담고, 공정과 공평이 가득한 세상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성숙한 종교인의 거룩한 삶이다. “지금 당신은 ‘공정’한가?”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락빌)한인교회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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