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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his best,
man is the noblest of all animals;
separated from law and justice,
he is the worst. [Aristotle]
최선일 때,
인간은 동물 중 가장 고상하다,
법과 정의에서 분리되면,
인간은 최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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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를 보았습니다.
기분이 몹시 구겨진 상태입니다.
그저 구겨진 정도가 아니라 분노와 좌절,
그리고 눈물이 펑펑 솟구치는 연민과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더럽게 구겨져 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일이!
사람이란 짐승들이 이렇게까지 더럽고 흉할 수가!
성선설은 저만치 물러앉았습니다.
순자던가요, 성악설을 주장했던 분이?
본래 악한 마음이 잠시 숨어 있을 뿐, 법과 정의에서
분리되는 순간, 동물 중 최악의 흉심을 드러내는 게
인간의 본래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 생각이
내 속내를 뒤집어 놓습니다. 최선일 때, 기분 좋을 때,
그럴 듯한 표정 뒤에 숨어 있을 때, 사람은 제법 고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법과 정의로부터 떨어져 나올 기미가
보이는 순간, 인간은 동물 중 가장 타락한 흉물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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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ce cannot be for one side alone,
but must be for both. [Eleanor Roosevelt]
정의란 한 쪽만을 위할 수 없다.
정의란 양 쪽 모두를 위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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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분노와 좌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영화
"도가니"는 정말 "가슴 아픈" 간접체험입니다.
더군다나, 그게 실화라니 그저 가슴 찡하게 본 후 금방
잊을 영화가 아닙니다. 뭔가 대책이 따라야 할, 나도
뭔가 해야 할 일이 꼭있어야 하리라는 양심의 부채가
덩달아 따라오는 무거운 영화체험입니다.
청각장애 어린이들, 그것도 심약하고 부모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이 줄줄이 성폭행 당합니다. 매 맞고
고문당하며 수없이 되풀이 폭행당하는 아이들은
오갈 데도 말할 데도, ‘말할 수도 없는’ 가엾은
우리의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폭행하고,
사실을 은폐하고, 결국 법과 정의마저 매수해 도망치는
파렴치한 어른들. 그리고 그 흉측하고 추한 진실 뒤에
숨어 여전히 희희낙락하는 악마의 모습들. 아! 세상이
이렇게 될 때까지 하늘은 왜 보고만 있는 걸까요?
정의가 뭐냐고 묻는 걸 잊을 정도로 기가 막힙니다.
기(氣)가 막혀 기에 체합니다. 그렇게 기막힌 체증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지속됩니다.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맑은 하늘은 그저 파란 하늘입니다.
미상불, 태연자약합니다. 흰 구름 몇 점 두둥실 떠 있는
하늘, 뻔뻔스럽게 평화롭기만 합니다. 이럴 수가!
그 하늘에 대고 묻습니다.
What is justice?
정의란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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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ce is a temporary thing that must
at last come to an end; but the conscience is
eternal and will never die. [Martin Luther]
정의란 결국 끝이 있는 임시적인 거다.
반면에, 양심이란 영원하며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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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고 뭐고, 사법부고 언론이고, 인권이고 양심이고,
거의 모든 걸 다 포기할 단계에 이른 영화 속 주인공은
울음마저 포기한 채 목멘 음성으로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바로 이 한 줄 기사가 작가
공지영을 <도가니>라는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의
실체, 그 실체의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덕에 그나마
정의란 말이 뒤늦게나마 간신히 소생하게 됩니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에서 잘 팔리는 책들 중 하나가 소위
"정의"[justice]에 관한 것들이랍니다. 이쯤에서, 세상이
진짜 필요로 하는 건 누가 어떻게 정의를 내린 그런 정의가
아닌, 우리 모두 안의 양심에 기초한 상식선의 정의란 걸
마틴 루터 [Martin Luther]가 상기시켜 줍니다. ‘정의’라는
개념 위에 거룩히 존재하는 양심, 그건 따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본래 그렇게 있는 거죠.
영화 속 파렴치한 어른들이 사회적 정의에선 용케 빠져
나갔을지언정, 자기들 스스로의 양심으로부턴 결코 영원히
빠져 나가지 못하리란 것, 그게 바로 하늘의 정의입니다.
사람이 만든 정의 위에 늘 우뚝 서있는 하늘의 양심, 그게
우리 모두 안에 하나씩 들어 있다는 것, 정녕 거룩한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제
기분도 좀 가라앉고 체증도 제법 내려간 듯합니다.
Cheers!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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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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