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멀리 떠나고 싶다! 이 말은 흔히 나이 든 노인들이 마음에도 없이 뇌이는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우회적(迂廻的)인 독백(獨白)이 아니다. 이는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未知)의 세계로 가보고 싶다는 현실적인 여행의 욕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여행이라고 했듯이 하늘 길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바닷길은 여객선 대치에 서서 해풍(海風)을 쏘이면서, 철길은 기차 창가에 팔고이고 앉아, 스쳐가는 풍경(風景)을 바라보며, 잘 뚫린 하이웨이를 관광버스의 한 구석 좌석에 기대앉아서 말이다. 그리고 작가적인 낭만에서일까, 아니면 이민 온 실향민(失鄕民)의 허전함에서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가로 질러 가는 카라반처럼, ‘나브코의 노래’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 가/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산들바람 불어 주는 내 고향/요단강 강물에 인사하고/시온성 무너진 탑을 보라/ 오 내조국 빼앗긴 내 조국/ 이란 집시들의 애가(哀歌),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낙타 등에 실려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1970년 중반, 그 당시만 해도, 해외 나들이(관광)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 가족을 거느리고,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샌프란시스코에 발을 딛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풍요(豊饒)의 나라인 미국으로의 이주(移住)였지 관광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일국교(韓日國交) 정상화 전인, 1963년부터 4년에 걸쳐, 많은 어린이 연극단원과 학부모들을 인솔하여 일본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공연하면서, 여러 명승지(名勝地)를 돌아보았지만, 그건 공연이 없는 날에 틈을 내어 관광한 것이지, 이 또한 관광을 위한 관광이 아니었다. 그 뿐인가 미국 이민 이후에도 어린이 연기자와 학부형들과 함께 5차례에 걸쳐 해외공연을 했지만 이 또한 공연을 위한 해외 나들이일 뿐이었다.
풍요의 나라,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의 내 나이 50살에서 70살 기간 동안, 마음만 먹으면 아들 딸 앞세우고, 마누라 손잡고 얼마든지 미국 내 명소(名所)는 물론,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이 시기에 내가 창단(創團)한 ‘노인’ ‘성인’ 그리고 ‘어린이’ 극단의 연극 연습과 공연에 내 자신은 물론, 자식들까지 연극제작에 강제로 끌어들이다 보니,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관광 기회마저 빼앗고 말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본국 방문 때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나, 친지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로부터 그들이 다녀온 미국의 여러 명승지나 구암, 그리고 남미(南美), 심지어는 아프리카 오지(奧地)까지의 관광담(觀光談)을 들었을 때는, 유럽은 고사하고 미국의 관광 명소인 그레이트캐년이나 나이아가라 뿐 아니라 연극인으로써 뉴욕의 브로드웨이에도 가보지 못한 나 ! 이 미국 촌놈의 주눅 든 모습을 내 스스로 발견 했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가 즐겨 보는 본국 KBS 가 토요일 마다 방영(放暎)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라는 영상(暎像)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미지의 나라 관경이 내 가슴에 유혹의 불을 지른다.
지중해(地中海) 연안의 한 작은 도시 그 언덕배기에 동화속의 집들 마냥, 색색가지 지붕의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그 언덕 아래의 오솔길(小路)을 저 멀리 수평선에 가라앉는, 저녁 해의 노을빛을 맞으며 걸어가는, 관광객들 속에 나도 끼어들고 싶어진다. 그리고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에펠탑도 보고 싶다. 또 네덜란드의 바람개비 풍차(風車)도 보고 싶다.
이태리의 깡소네 ‘오 소래미오’ 의 노래 소리가 파도 결에 부서지는 나폴리 해변 모래사장에 발 뻗고 주저앉아, 바다 멀리를 바라보고도 싶다. 그뿐인가 운하(運河)의 도시 베니스에서 콘도라의 뱃전에 앉아, 뱃사공의 노질을 바라보면서 물갈기 질을 하고 싶다. 또한 남미 스페인으로 발길을 옮겨, 춤추기를 좋아 하는 나도 미남 미녀들이 어울려 추는 플라밍고 춤 속에 끼어들고 싶다. 그리고 브라질의 삼바축제에도 끼어들어, 이 늙고 여윈 엉덩일 망정 마음껏 흔들고 싶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생각 말고도, 극작가로써의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그건, 대영제국(大英帝國)이 그들의 식민지였던 인도(印度)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햄릿’ ‘오세로’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 같은 불후(不朽)의 희곡(戲曲)을 남긴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생가(生家)와 그의 성장배경을 알아보고 싶다. 또한 영국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그린 희곡 ‘바다로 가는 기사(騎士)’를 쓴 아일랜드의 존. 싱의 생가도 말이다. 그리하여 도바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건너가, ‘여학사(女學士)’ 라는 유명 극본을 쓴 모리엘의 성장배경도 말이다. 그리고는 철(鐵)의 장막의 나라 러시아로 발길을 옮겨, ‘시구창’ 이란 유명 희곡을 쓴 막심. 콜키와 가깝게는 미국의 ‘욕망의 이름 이란 전차’ 를 쓴 극작가 테네시 우일암스 가 태어난 마을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어쩜, 나 혼자만의 넋두리에 불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노후(老朽)된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듯, 노구(老軀)의 내 몸은 이제 브레이크의 잠금쇠가 굳게 잠긴 자동차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작동(作動)이 되지 않는 컨디션(Condition)에 놓여져 가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멀리 멀리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의욕만 가슴에 담은 체, 또 하루의 하얀 날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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