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세라 세라 왓에버 윌 비 윌 비.” 도리스 데이가 히치콕의 스릴러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불러 오스카상을 탄 이 노래는 옛날에 한국에서 삼척동자도 부를 만큼 세계적으로 히트한 곡이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때 서울의 용산극장에서 봤는데 영화는 히치콕의 작품 중 범작이나 데이가 코맹맹이 소리가 섞인 약간 허스키한 음성으로 부르던 주제가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노래의 가사를 배워 혼자 부르곤 했는데 지난 13일 모처럼 오래간만에 ‘케이 세라 세라’를 사람들과 함께 다시 불러 보았다. 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가 마련한 2011년도 각 부문 베스트 시상만찬에서 도리스 데이에게 생애업적상을 줄 때였다.
오래 전부터 외부 출입을 하지 않는 데이의 부탁으로 배우이자 가수인 로버트 다비(티머시 달턴의 본드영화 ‘살인면허’에서 악역)가 데이를 대신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참석자들에게 후렴부분을 따라 부르라고 해 일제히 함께 불렀다. 옛날 생각에 가슴이 싸하니 아려왔다. 그런데 이 노래는 오는 2월 그래미 명예전당에 이름이 오른다.
노래와 연기와 춤에 모두 능한 만능연예인 데이(87)는 마치 이웃집 여자처럼 친근감이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데이는 이 친근감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나왔으면서도 진지한 배우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특히 데이는 자신을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그의 유일한 오스카 연기상 후보작 섹스코미디 ‘필로 토크’(1959)와 함께 ‘러버 컴백’과 ‘센드 미 노 플라워즈’에서 록 허드슨을 상대로 30이 넘은 숫처녀로 나와 그 이미지가 굳어버렸다. 어쩌면 데이가 40년 전 은막에서 은퇴할 때 마음속에는 자신에 대한 이런 일방적인 평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댄서가 되려던 데이는 13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꿈을 접어야 했는데 오랜 치료기간에 어머니의 권유로 노래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기 전 먼저 가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왕년의 유명한 레스 브라운 빅밴드와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했는데 이때 불러 빅히트한 노래가 ‘센티멘털 저니’(1945)다. 이 노래는 당시 전쟁서 귀향하던 군인들과 그들을 맞는 가족들의 마음을 울린 곡으로 내 여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어 나온 데이의 히트곡들 중 우리 귀에 익은 것들은 대부분 데이가 나온 영화 주제가들이다.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이츠 매직’은 데이의 스크린 데뷔작 ‘공해상의 로맨스’, 오스카상을 탄 ‘시크릿 러브’는 웨스턴 뮤지컬 ‘컬래미티 제인’ 그리고 ‘필로 토크’는 동명영화의 주제가들이다.
배우 생애 20년간 총 39편에 출연한 데이의 대부분 영화들은 로맨틱 코미디나 뮤지컬인데 그가 보기 드물게 드러매틱한 연기를 한 영화가 제임스 캐그니와 공연한 뮤지컬 전기영화 ‘러브 미 오어 리브 미’. 여기서 데이는 갱스터 애인을 둔 가수 루스 레팅으로 나와 강력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데이가 영화에서 부른 ‘아일 네버 스탑 러빙 유’도 빅히트를 했다.
그런데 데이의 음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데이는 우리의 만찬장으로 전화를 걸어 “정말로 당신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많은 개와 고양이들을 돌봐야해 못 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물론 이 말은 외부에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그의 핑계이긴 하나 영화와 레코드로만 듣던 데이의 비음 섞인 정다운 음성을 직접 듣자니 감개가 무량했다.
이 날 상은 데이를 대신해 ‘센드 미 노 플라워즈’를 감독한 노만 주이슨이 받았다. 주이슨은 데이와 전화 통화에서 “당신은 자신의 진실과 감정을 영화에 그대로 가져 온 사람이었다”면서 “당신은 영원히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치하했다.
이에 데이는 “노만, 당신은 상냥하고 좋은 남자에요”라며 보고 싶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데이는 곧 이어 “가고 싶어도 내 개들이 안 보내줘요”라더니 “농담이에요”라며 깔깔대고 웃었다. 데이의 밝고 명랑한 성격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데이는 은퇴 후 한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으로 있었던 북가주 카멜에 살면서 버려진 개와 고양이 등 동물들을 돌보며 사는데 ‘도리스 데이 동물재단’(DDAF)을 설립, 동물보호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데이가 최근 지난 80년대 취입한 노래들을 새로 믹스한 앨범 ‘마이 하트’(My Heart·사진)를 내놓았다. 앨범에는 ‘마이 하트’ 외에도 데이가 꼬마 때 처음 부른 뒤로 가장 애창하는 노래가 된 ‘라이프 이즈 저스트 어 보울 오브 체리즈’ 및 ‘데이 드림’ 등 13곡이 담겨 있다. 또 데이의 소개와 함께 그의 작고한 아들 테리 멜처가 부른 ‘해피 엔딩스’도 수록됐다.
세월이 지나도 데이의 영화와 노래가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데이가 영화와 노래에서 표현하고 살았던 단순하고 온화했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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