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먹다 이 빠진다”는 속담이 있다. 방심하는 데서 뜻밖의 실수를 한다는 말이다.
해마다 12월부터 새해의 1월은 정말 바쁜 시기이다. 총회, 동문회, 전우회, 향우회, 봉사회, 친목회, 크리스마스 등, 송구영신의 연례행사가 줄을 이어 달력에 진한 펜으로 동그라미 쳐 놓고 잊지 않고 참석한다. 어떤 날은 오전오후에 겹치기 행사에, 그 새에 경조사까지 끼어들어 실로 두 몸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쩌다 시간이 겹칠 때에는 부득이 한 쪽은 참석하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을 앞세운다. 더욱이 꼭 참석해야 할 자리에 참석치 못할 때는 그에 대한 인사에 심로하게 되며 궁할 때가 많다.
연말행사가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서로 소식 없이 지내다가 연말 한 번의 만남으로 인사치례(?)가 되고 정을 나누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지난 해 12월 8일을 시작으로 날짜 순서대로 해당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다음 차례를 확인하려고 매일 아침 달력을 살펴보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데 12월 17일. 6·25국가유공자 워싱턴지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인편으로 뜻밖의 급한 부고를 접했다. 내 고향 선배로 평소에 가깝게 돈독한 교제로 사귀어 온 변영환 선배님의 사망소식이다. 같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고로 입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12월 19일 저녁 6시 센터빌의 중앙장로 교회에서 고별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불편한 가운데 있었지만 3일 전만 해도 기력은 쇠하였으나 나와 전화로 통화를 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공식 행사가 끝나기 바쁘게 아파트로 돌아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전화 다이얼을 돌려 봤으나 허사였다.
변영환 선배님은 고향이 나와 같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1946년 3월 13일 공산당에 항거한 역사적 3.13 함흥학생사건 때는 선혈의 선봉에 서서 항거하다가 투옥한 실명의 역사적 인물이었다. 북한 땅을 탈출하여 남한 땅에서 6·25를 겪고 이곳 워싱턴으로 이민을 와서도 신앙적으로 본을 보이며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신 선배이다. 만날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두레박질하며 회향의 실마리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끝내 이국땅에서 소천하다니….
나는 애도의 시를 썼다. 선배의 영전에 읽을 글을 “그토록 고향을 그리시더니…” 꼭 고별예배 때 낭송하려고 몇 번이고 눈물을 흘리며 읊어 보았다.
나는 차가 없다. 그래서 중앙장로교회에 출석하는 이광수 장로에게 함께 동승하여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랬는데 19일 오후 갑자기 열이 나고 오한이 전신을 옥조이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제백사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고별예배에 가서 관을 덮기 전에 마지막 선배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하면서 기를 썼으나 허사였다. 결국 이광수 장로에게 애도시만 전하고 말았다. 결국 발인과 하관예배에도 참석치 못하고 아픈 마음으로 영별한 채 그대로 병상에 누운 것이 2012년 새해의 1월 20일까지 한 달 넘게 자리를 틀고 지냈다. 그래서 다른 모임에도 성탄절에도 평생 빠져 본 적이 없는 송구영신 예배도 방콕으로 보냈다. 2년을 드러 누운 셈이다. 흔히 말하는 독감이다. 목이 아프고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기침으로 잠을 잘 수 없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내 80평생에 이렇게 지독한 독감은 처음이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한약제를 복용하여도 끄떡도 않았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남보다 건강에 관심을 두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30년 가까이 함께 하는 지병 당뇨로 인해서 인슐린을 주사하며 거의 매일 1시간 걷기운동을 하며 음식을 조절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즉시 손을 씻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는 등, 정말 엄살스러울 정도도 건강관리를 철저히 해 왔다고 생각하며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기분 좋은 말을 들어 왔다.
그랬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 없는 미세한 감기 병균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같이 무력할까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과 자궤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또 생각해 보았다. 내 자신이 건강관리를 잘 한다고 했어도 어디에 방심한 틈이 있었기에 당한 사건이라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원인이 있었다. 아프기 그 전 날 욕조에 더운 물을 담아 몸을 담그고 나와서 아파트 방바닥을 청소기로 밀면서 창문을 잠깐 열어 놓았던 방심이 화근이 된 것이다. 결국 작은 방심이 한 달 식물인간으로 고역을 당하게 했다. 방심은 화근의 근원이 된다. 물론 무슨 일에든지 방심은 금물이지만 특히 건강을 해치는 방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이번에 다시 깨닫게 됐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말이 있다. 긴장의 문에 굳게 빗장을 걸고 방심의 틈을 내지 않도록 하여 모두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겨울을 보내면 좋겠다.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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