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의 함수관계는 무척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왕년의 명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잔다르크(1412-31) 영화를 보니까 그가 계시를 받았다면서 불란서 태자를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올리앙스성을 영국군에게로부터 탈환하는데 남장을 하고 앞장섰던 잔다르크를 바로 그 왕이 10만양의 금전을 받고 버건디 영주에게 팔아먹고 버건디 영주는 영국군 사령관과 야합한 가톨릭 주교에게 역시 돈을 받고 그의 신병을 인도한 결과 불법 종교재판을 통해 그를 화형시키는 과정이 절절하게 묘사되었다. 왕도 영주도 또 주교조차 자기 지위 보전을 위해 소위 실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다. 명예욕을 포함한 사리사욕의 동기에서 출발했거나 국민의 복지와 행복 추구를 목표로 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에서 나왔거나 또는 두 가지 동기가 적당히 배합되었거나 간에 선거에 당선되고 보아야 정권을 잡아 경륜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에 이기자면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거구의 크기와 투표권 행사자들의 지위에 따라 필요한 돈의 액수가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한국의 예를 들자면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위해 적어도 고무신 정도는 유권자들에게 돌리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요새는 현 국회의장이 3년 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 국회의원들에게 300만원씩 돌렸다는 보도로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야당에게 이 사건이 절호의 호재가 못되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비슷한 관행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는 얼마나 많은 돈이 뿌려질까? 우선 현재의 미국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직접 돈이 전달되어 한 표를 사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거위원회라는 조직과 TV 방송 등의 선거 활동은 돈 먹는 하마이다. 물론 오바마는 현직 대통령이라 경선자가 없기 때문에 예선전에 드는 돈은 거의 없겠지만 미트 롬니와 대척할 본선에서는 아마도 2008년의 지출 액수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있었던 뉴 햄프셔주 예선전의 민주당 후보들이 오바마를 포함하여 무려 14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은 그 주에서는 누구나 1,000불만 지불하면 투표지에 등재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일듯하다) 좌우지간 오바마는 ‘희망과 변화’라는 화려한 표어에 걸맞지 않게도 쓸 수 있는 액수에 제한이 따르는 공적 자금을 거절하고 개인들로부터 선거 기금을 모아 무려 6억5,000만불을 거둬들였다. 오바마 대통령선거위원회가 민주당 전당위원회 및 18개주 민주당위원회와 협조해서 받은 돈을 다 합치면 10억불 가량이라는 보도도 있다.
정치헌금을 거두는데 있어서 오바마처럼 현직에 있는 사람이 열세에 있을 수도 있는 예외는 조금은 하락되어 백악관의 안도의 숨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지만 아직도 실업률이 8.5%라는 경제상황 아래서의 낙선 개연성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직 대통령이 아닌 사람으로 아이오와주 코커스와 뉴 햄프셔주 첫 예선에서 최초로 승리한 롬니는 2011년의 마지막 세 달 동안 2,400만불을 모금할 수 있었다. 론 폴과 뉴트 깅리치 두 사람 진영의 돈을 합쳐 2,200만불이지만 롬니가 1월21일에 있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1등을 하고 플로리다에서까지도 반복을 한다면 롬니의 공화당 주자 등극은 떼논 당상이며 그에게 몰려들어 올 돈 액수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롬니가 베인 투자회사(Bain Capital)에 파트너로 근무했을 때의 행적에 대해 정반대의 평가가 충돌한다. 롬니는 베인 회사가 지지부진하던 스테이플스나 도미노 피자 등을 사들여 흑자 기업으로 변모시켰기에 10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노라고 자랑한다. 한편 한동안 보수계의 총아로 롬니의 대항마가 될 것이라고 뻐기던 릭 페리는 깅리치와 아울러 롬니가 여러 회사들을 인수한 후 파산시켰기에 직장의 파괴자라고 규정한다. 페리는 TV 공개토의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폐쇄시키겠다는 연방부서 셋을 거명하다가 둘만 언급하고 세 번째 것은 기억조차 못했던 등의 이유로 뉴 햄프셔 주 예선에서는 1%의 지지만을 획득했기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건곤일척의 재기를 노려 롬니를 시체를 뜯어먹고 뼈만 남기는 독수리(vulture)라고 까 내린다. 깅리치도 질새라 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수퍼 정치활동 위원회(Super Political Action Committee: Super PAC)나 다른 후보들이 롬니의 과거를 맹공할 것이라면서 그 특유의 과장 솜씨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아마겟돈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그런데 수퍼 팩이 문제다. 각 후보에게는 예선 본선을 합쳐 5,000불만 기부할 수 있는 현행법의 허점이 바로 수퍼 PAC이다. 후보자를 지지하는 어떤 단체들이나 개인들이 수퍼 PAC을 조직하여 후보나 그의 선거 진영과 직접적인 협조가 없는 한 얼마든지 돈을 모아들일 수 있고 그를 지지하거나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TV 광고 등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니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던지 문자 그대로 알쏭달쏭이다. 예를 들면 깅리치의 수퍼 팩이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반 롬니 TV 광고로 융단 폭격을 하는데 라스베이거스의 어떤 도박장 주인이 500만불을 기부한 최근의 사례도 있다. 연합된 시민들 대 연방선거위원회라는 대법원의 판례 후에 생겨난 괴물이 수퍼 팩이다. 후보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지만 글쎄올시다다. 만에 하나 깅리치가 대선에 성공하는 이변이 생기는 경우 간접적으로(?) 자기를 도운 도박장 주인을 연방 법무장관쯤으로 임명하는 흉변이 생기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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