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정 희 논설위원
중국 황하의 상류로 올라가면 용문이라는 급류 지역이 있다고 한다. 골짜기의 물이 너무 거세어서 웬만한 물고기는 거슬러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물고기가 그 가파른 용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순간 용으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바로 등용문이다.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기어이 목표를 달성하는 삶, 입신출세의 의미로 보통 쓰인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등용문’의 주인공은 존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만약 물고기가 용문 근처에서 나고 자라 그곳 물살에 익숙하다면 어떨까. 부모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고 물살을 헤쳐 나갈 특수 모터까지 물려받는다면 그들의 ‘등용문’은 어떨까. 저 아래에 개천에서부터 숨 가쁘게 올라온 미꾸라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류에서부터 상류까지의 긴 여정을 태생적 특혜로 면제받고 출세의 사다리 꼭대기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부류, 요즘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1%’ 들이다. 그들 상위 1%, 혹은 10%는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상류층이고, 하위 10% 혹은 20%는 계속 하류층으로 남는 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아버지가 부자이면 아들도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세기 전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막는 장벽은 ‘인종’이었다. 백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2등 시민으로서의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흑인은 물론 우리 같은 아시안들도 마음대로 집을 사거나 취직은 물론 대학에 갈 수도 없었다. ‘인종’이 바로 ‘용문’이어서 유색인종들은 감히 그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못했다.
거친 물살을 ‘꿈’으로 거스른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1963년 노예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 D.C.에서 열린 평화 대행진에서 그는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래서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 그런 날들에 대한 꿈이었다.
그로부터 50년,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흑인이 백악관을 차지할 만큼 미국사회는 진화했다. 하지만 지금 인종 대신 다른 장벽이 들어섰다. ‘소득’이다. 백인 어린이와 흑인 어린이는 손을 잡지만, 부유층 어린이와 빈민층 어린이가 손을 잡을 기회는 거의 없다. 나서 죽을 때까지 옷깃 한번 스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는 동네,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끔 LA 서쪽에서 한인타운으로 운전할 때가 있다. 교통체증을 피하느라 주택가를 따라 운전하다 보면 도로변 풍경이 바뀐다. 벨에어, 베벌리 힐스 등 서쪽 부자 동네에서는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저택이 띄엄띄엄 보이다가 한인타운 가까울수록 콘크리트 건물만 다닥다닥 붙은 삭막한 풍경이 된다. 거리로는 불과 몇 마일, 하지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득이 주거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거지역은 교육 환경으로 직결되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비슷한 소득계층끼리 같이 공부하고 같이 대학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계층은 굳어진다.
최근 스웨덴에서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은 선진국들 중에서 특히 계층이동이 어려운 나라이다. 소득기준 하위 20% 가정에서 자란 남성 중 42%는 어른이 되어도 같은 소득 계층에 머문다. 한편 소득이 상위 20%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 중 62%는 어른이 된 후에도 소득상위 40%에 속한다.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을 깊게 하는 대표적 요인은 교육이다. 빈곤층일수록 편모 가정이 많고, 교육열이 낮으며, 학교 교육의 질이 떨어져서 빈부 간 학력차이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빈곤층과 부유층 간 대학 졸업률은 지난 1990년대 이후 50% 이상 벌어졌다. 학력은 소득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미국 개천에서 용은 이제 멸종위기를 맞았다. 개천에서 절대로 용이 날수 없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킹 목사가 인종의 장벽을 꿈으로 허물었듯 소득의 장벽을 허물고 미국을 하나로 합칠 꿈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올해는 선거의 해. ‘1%’ 대신 ‘99%’를 챙기는 리더십을 우선 선택했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