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니 와이스멀러가 나오는 타잔영화를 처음 본 것은 부산 피난시절 꼬마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제인이 인간의 말을 못하는 원숭이 인간인 타잔의 떡 벌어진 알몸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유 미 타잔 제인” 하면서 영어공부시키는 장면. 마침내 제인의 말을 깨달은 타잔이 주먹 쥔 손으로 제인과 자기 가슴을 번갈아 가며 쿡쿡 찌르면서 “제인 타잔 제인 타잔”을 연발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 장면은 ‘유인원 타잔’(1932)에 나오는데 제인 역은 배우 미아 패로의 어머니로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에 여러 편 나온 모린 오설리반이 맡았다.
어렸을 때 본 타잔영화는 정말로 이국적이요 환상적인 모험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타잔영화는 자연 대 문명의 충돌이자 상아와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어린 눈으로 본 그것은 순전한 액션과 모험이었다.
봄이 오면 창경원에 가 동물구경하는 것이 큰 희망이었던 어린 시절 영화에서 코끼리와 악어와 사자와 코뿔소 그리고 하마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타잔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나는 어렸을 때 영화뿐 아니라 책과 만화도 탐독했었다. 물론 나는 타잔영화를 통해 아프리카를 처음 알게 됐는데 유명 흑인가수요 배우이자 민권운동가인 해리 벨라폰테도 타잔영화를 보고 비로소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타잔영화의 동물들 중에서도 보기에 가장 즐거웠던 것이 정글에서 타잔을 키운 원숭이들. 그 중에서도 똑똑하기가 사람 못지않은 타잔의 단짝인 침팬지 치타의 재롱이 일품인데 치타는 재롱꾼일 뿐 아니라 ‘타잔과 그의 짝’에서처럼 타잔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해 크리스마스 전날 이 치타가 80세로 플로리다의 한 영장류보호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치타의 신원확인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동물 전문가들은 평균 수명이 40년인 침팬지가 80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플로리다에서 치타를 죽을 때까지 돌봤다는 당사자는 이 치타를 지난 1960년께 와이스멀러 가족 측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반박했다.
타잔영화에서 치타 역은 여러 침팬지가 했지만 타잔하면 와이스멀러이듯이 치타하면 그의 침팬지다. 그런데 침팬지가 생긴 것이 모두 똑같아(코미디언 조지 번스를 똑 닮았다) 과연 이 침팬지가 지난 30년대 맹활약한 치타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는 실정이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쓴 소설이 원작인 타잔영화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모두 50여편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타잔 역은 와이스멀러 외에도 고든 스캇, 렉스 바커, 론 엘리, 클린트 워커, 족 마호니 및 크리스토퍼 램버트 같은 신체 늠름한 배우들이 했지만 와이스멀러를 따라갈 자가 없다.
와이스멀러(1984년 79세로 사망)는 오스트리아-헝가리 태생의 미국인으로 수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그는 스크린의 여섯 번째 타잔인데 데뷔작 ‘유인원 타잔’이 빅히트를 하면서 대뜸 국제적 스타가 되었다. 미남에 수영으로 단련된 강건한 근육질의 신체 그리고 동물적 성질과 날렵한 동작을 지닌 타고난 타잔이어서 무려 12편의 타잔영화에 나왔다.
‘정글 스피크’로 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타잔의 유일한 가족인 치타 외에 사람으로서 처음 새 가족이 된 사람이 제인. 이 세 식구는 ‘타잔 아들을 발견하다’에서 정글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남은 아기를 타잔이 입양해 ‘보이’라는 이름으로 키우면서 네 식구(사진)가 된다. 그런데 아기를 비행기 잔해에서 구해낸 것도 치타다.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 중 이색적인 것이 ‘타잔의 뉴욕모험’. 타잔과 제인이 뉴욕으로 돌아간 보이(자니 셰필드)를 찾아 맨해턴으로 오는데 신사복을 입은 타잔이 처음 보는 문명세계에 당황하고 어리둥절 하는 모습이 우습다.
와이스멀러의 타잔영화를 보면 타잔은 물론이요 제인도 노출이 심한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지상과 수중에서 타잔과 희롱을 하는 장면이 많은데 이는 1930년대 초만 해도 할리웃에는 검열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타잔하면 잊을 수 없는 것이 “아 아 아 아” 하며 내지르는 타잔의 요델 고함소리. 이 소리는 와이스멀러의 육성으로 그 뒤 다른 배우들이 타잔으로 나온 영화에서도 그의 것이 사용됐다.
한편 본드 이전의 션 코너리도 타잔영화에 조연으로 나왔다. 그는 ‘타잔의 대모험’(1959)에서 다이아몬드를 찾아 정글에 침입했다가 타잔(고든 스캇)에 의해 황천으로 간다.
치타의 사망소식이 나온 뒤 패로는 평소 자기 엄마가 치타를 ‘기회만 있으면 무는 후레새끼’라고 불렀다고 트위터에 남겼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영장류 치타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가. 타잔영화는 요즘도 종종 매주 토요일 아침 케이블TV TCM에서 방영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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