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의 짧은 겨울 해거름 속에 서 있는 겨울나무들의 모습이 쓸쓸하다. 종잇장처럼 얇은 겨울 해가 자작나무 숲 너머로 떨어져 버리고 나면 세상은 한결 더 춥고 어두워진다.
춥고 어두운 세상의 저녁 어귀를 밟아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식구들의 신발 곁에 내 신발 한 켤레를 가지런히 벗어두는 사소한 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계절이다.
내게는 유난히 춥거나 마음이 쓸쓸한 날이면 쌀밥을 짓는 버릇이 있다. 하얀 쌀만 씻어 쌀뜨물을 받아놓고 전기밥솥을 밀어둔 채 냄비에 쌀을 안친다. 렌지에 올려놓은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밥물이 푸르르 끓어오른다. 내친 김에 고소한 숭늉 한 사발을 만들고 싶어 렌지의 기억시스템에 뜸 들이는 시간을 곱절로 입력해 놓는다.
날이 추워지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삼동의 겨울을 나기 위해 생솔가지에 눈물 흘리며 숱한 나뭇단을 아궁이에 밀어 넣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도시로 나온 이후에는 연탄불 하나에 의지해 구들을 덥히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을 어머니는 그 추운 부엌에서 얼마나 분주했을까.
읍내의 우리집에는 연탄아궁이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안방에 있었고 하나는 꽃밭 쪽으로 달아낸 건넌방에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겨울마다 비좁던 건넌방의 간이부엌에 조촐한 잠자리 하나를 마련하곤 했다. 읍내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거지 아줌마를 위한 잠자리였다. 아궁이의 두꺼비집 위에 납작한 돌을 올려놓은 다음 군용담요를 깔아주면 그분은 거기에서 겨울을 났고 나머지 계절은 농협창고의 처마 밑에서 모기를 쫓으며 한뎃잠을 잤다.
어머니는 밤이 늦어도 그분이 들 때까지 양철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아버지는 연탄가스의 위험 때문에 마뜩치 않게 생각했고 어렸던 우리들은 뜨거운 물 한 양동이를 아쉬워했다. 겨울밤, 드르륵하고 마루문 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그분이 식어빠진 호빵 하나를 마루 위에 놓고 가기도 했다. 거지가 가져온 것이라고 끝내 아무도 손대지 않던 그 빵을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드시면서 더러운 건 음식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라 말씀하셨다. 해마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가던 시절이었지만 그분은 생연탄을 쌓아둔 그곳에서 무사히 한겨울을 나곤 했다.
밍크담요가 깔려 있던 연탄구들 위에 발을 넣으면 딸그락거리며 발채에 밥주발이 걸리기도 했다, 아랫목은 발목이 데일 것 같이 뜨거웠지만 문풍지를 흔들어대는 웃풍 때문에 코끝이 시렸다. 그 남루했던 시절, 겨울바람은 또 얼마나 심술궂었던가. 처마 밑 양은대야를 뒤집어놓고 먼데로부터 찹쌀떡 장수의 처량한 목소리를 불러와 잠을 설치게 했다. 연탄 아궁이 위 노란 양동이 속에는 아침에 쓸 뜨거운 물이 싸르륵거리며 끓고 있고 아침에 신고 갈 운동화가 부뚜막에 나란하던 그 밤에도 우리들은 키가 자랐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끝날 즈음이면 내복의 길이가 뎅강하니 복사뼈 위로 올라가 버리곤 하던 기억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나는 남동생과 함께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밥을 해먹는 것도 빨래를 하는 것도 다 서툴었지만 그중 제일 서툰 것은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이었다. 퇴근해 돌아와서 식은 아궁이를 바라보는 일은 낭패스럽기만 했다. 나는 번개탄을 사르고 연탄구멍을 맞추기 위해 숨을 참는 법을 배워야 했다. 불꽃을 주고받으며 연탄 두 장이 붙어버린 날에는 어머니처럼 부엌칼로 떼어내기도 하면서 나는 점차 연탄 때는 법에도 서울살이에도 익숙해져 갔다.
식어버린 구들에 온기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밤기차 소리가 들려왔다. 집을 떠난 사람에게 들리는 밤기차 소리만큼 서글픈 음색이 또 어디 있을까.
도서관에서 한밤중에 돌아온 남동생이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사용하던 것도 그 연탄이었다. 연탄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삼발이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놓으면 물은 삽시간에 짜르르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했다. 스물의 푸르던 동생은 마술을 부리듯 냄비 귀에 수저를 꽂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으레히 찬밥 한 덩어리를 찾곤 했다. 그 밤, 그 초라하던 부엌에는 별모양의 삼발이가 바알갛게 불에 달구어져 있었고 하늘에는 실눈을 뜬 초승달과 차가운 별 몇 개가 떠 있었던 것 같다.
노란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솔가지 두어 개를 아궁이에 더 던져 넣으시던 어머니는 얼마나 고왔던가. 두꺼비집을 올려놓고 고구마를 구워주고 가래떡을 구워주던 어머니는 얼마나 젊었던가. 연탄불 하나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물 데워 어린것들 목욕시키고 빨래까지 빨아 널던 어머니의 성성한 기운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하루 종일 연탄구멍에서 헝겊마개를 뽑아놓았던 그런 날에는 탄불을 갈아줘야 하는 시간이 한밤중이나 새벽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시간 맞춰 잠에서 깨어 남루한 스웨터를 걸쳐 입고 탄불을 갈고 들어오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월남치마 자락에 묻어 들어온 겨울 냉기 속에서는 싸아한 바람냄새가 나곤 했다. 그랬던 어머니는 지금 생명을 다 태우고 하얗게 변해버린 연탄처럼 가벼워진 몸을 한 채 하루하루 세상을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시다.
“연탄집게만 빼고 다 있습니다.” 80년대 낮선 뉴욕의 거리에서 유리창에 광고를 써붙인 조그만 한국 가게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이 잊히질 않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은 시인이 있다. 정말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연탄 한 장의 구실을 해준 적이 있었는지, 혹여 불완전 연소된 연기처럼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겨울 저녁이다.
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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