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은 왜 위궤양에 걸리지 않을까?’라는 책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스탠포드 대학 신경과학자인 로버트 사폴스키 박사이다. 그의 관심이 얼룩말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얼룩말이나 영양 같은 동물에게는 없는 위궤양이 왜 사람에게는 흔할까라는 의문에서 그의 연구는 시작되었다.
비슷한 질문을 우리의 할머니들에게 던져 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소화가 안되요. 위궤양에 걸린 것 같아요”라고 공부나 일에 지친 손자 손녀가 하소연을 하면 할머니는 배를 쓸어주면서 말씀하실 것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소화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란다.”
의학 교육 한번 안 받은 우리 할머니들의 지혜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과학자들의 학문적 결론과 맞닿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할머니가 ‘마음’ 혹은 근심 걱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사폴스키 박사는 ‘스트레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계속 규명되고 있다.
새해를 맞아 덕담이 풍성하게 오갔다. 나이가 드니 덕담의 내용도 바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 이어지는 말이 십중팔구는 ‘건강’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라는 이메일을 비롯해 ‘건강 잘 챙기라’는 새해 인사를 많이 받았고 또 했다.
진학, 결혼, 취직, 승진 혹은 어떤 운명적 만남 … 젊은 날의 다채로운 소망들이 나이에 떠밀려 사라지고 나니 그 빈자리에 ‘건강’이 우뚝 자리를 잡는다. 중년이후에는 ‘건강’이 바로 ‘복’이다.
삶의 질, 수명과 직결되는 건강을 지키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는 것,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건강식을 하고 운동을 하고, 보약을 챙겨먹는 일들이 전자라면 금연, 금주·절주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작심삼일의 허탈을 각오하고 하는 새해결심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것 다 챙기고, 나쁘다는 것 입에도 안대는 데도 덜컥 병에 걸리는 케이스들이 적지 않다. 심장마비로 쓰러지기도 하고 암에 걸리기도 한다. 유전적 요인 등 다른 원인들이 있겠지만 이럴 때 보통 내려지는 민간 진단이 있다. “속을 너무 끓이더니 …”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 이다.
건강을 되로 챙겨도 스트레스가 말로 깎아버리면 밑 빠진 독이라는 말인데 사폴스키 박사가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 몸이 지금 같은 문명사회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얼룩말이나 영양, 혹은 사자처럼 대초원에 살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유전자에 깊이 박혀있는 것이 ‘싸움이냐 도주냐’하는 스트레스 대처 메카니즘이다.
사람이든 얼룩말이든 맹수와 딱 마주치는 위기상황이 닥치면 비상모드로 돌입한다. 부신피질에서 일종의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혈압이 올라가고 에너지가 온통 근육으로 쏠리며 부차적인 기능들은 잠정 중단된다. 오로지 도망가는 데 전력투구해서 생명을 보존하려는 본능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사는 삶이 스트레스의 연속이라는 것, 그때마다 우리 몸은 태고적 기억에 의존해 비상모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상습적으로 반복되고 그때마다 몸이 전투태세로 긴장하니 건강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혈압, 만성피로, 위궤양, 심장질환, 당뇨 등의 지병이 생기면서 묵묵히 버텨주던 몸이 어느 순간 무너진다.
걱정, 의심, 두려움, 절망은 우리를 서서히 무너트려서 지레 죽게 만드는 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미 닥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만도 벅찬데 앞으로 닥칠 것에 대한 걱정 두려움이 또 스트레스가 되니 스트레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오늘은 오늘 하루 분의 짐만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의 짐에 후회라는 어제의 짐을 더하고, 걱정이라는 내일의 짐까지 더하니 그 짐 앞에 장사가 없다. 게다가 걱정하는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걱정거리가 10개쯤 동네 어귀에 나타나면 9개는 중간에 도랑으로 빠지고 문 앞에 도달하는 건 하나뿐”(캘빈 쿨리지)이라고 한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 중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8%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새해라는 시간의 산 앞에서 지난해를 돌아본다. 뭔가를 걱정하고 조바심내며 속 끓였던 기억이 묵직한 통증으로 느껴지는 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련하다. 대부분이 쓸데없는 걱정, 그로 인한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권정희 논설위원 /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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