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먹는 장면이 나오면, 저녁을 막 먹고 난 후라도 나는 침을 흘린다. 특히 허름한 포장마차나 국수집에서 주인공이 떡볶이, 꼬치어묵, 우동, 라면, 자장면을 먹으면 더욱 그렇다. 훌훌 들이키는 국물도 무조건 당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장면이 나오면 조금도 동요가 안 되는 데 말이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 뒷켠 허름한 살림집 식당에서 사먹던 라면, 맵디매운 비빔냉면, 그리고 자장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단무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고도 늘 아쉬웠었다. 지금도 저녁에 강의가 있는 날, 밤에 늦게 돌아와 속이 허전하면 남편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가끔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곤 하는데, 그리고 보면 음식에 대한 추억의 그리움은 평생 가나 보다.
이제 미국에서 산 날이 한국에서 산 날 수보다 훨씬 더 많은데도 아직 이렇다 할 음식의 추억을 만들지 못했는데, 지난 연말에 샌디에고로 휴가를 가서 작은 바닷가 동네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맛 본 치즈버거와 프렌치프라이 맛이 아직도 혀끝에서 떠나질 않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평소에 햄버거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먹는, 좋아하지 않는 음식인데 그렇다.
샌디에고 근교의 미리 정해 놓은 숙소를 찾아가는데 어느 식당 앞에 한 블락도 넘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작고 허름해 보이는 식당의 간판을 보니 ‘Hodad’s’ 라고 쓰여 있었고, 맥도널드처럼 지금껏 판매된 햄버거수를 적어 놓았는데, billion이라고 쓴 곳에 X표를 하고 zillion이라고 쓰여 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햄버거를 팔았다는 것이다.
원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지만 호기심이 발동했다. 남편이 눈치를 채고 다음 날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음식점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는 걸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이 크게 선심을 쓴 것이었다.
40분쯤 줄지어 기다리다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선 식당 안은 매우 비좁고 허름했다. 벽은 빼곡하게 각 주의 차 번호판과 서핑보드 사진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식당 한 구석에는 폭스바겐 운전석이 식탁으로 비치되어 있기도 했는데, 우리는 길 가를 보고 앉게 되어있는 나무벤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메뉴는 지극히 간단했다. 햄버거, 치즈버거, 어니언 링, 프렌치프라이, 그리고 음료수. 평소에 햄버거와 튀긴 음식을 안 먹는 남편은 먹을 것이 없었다.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미안했지만 할 수 없이 나 혼자 미니 치즈버거 바스켓과 루트비어를 시켰다. 10달러도 안 되게 주문을 하니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종업원이 친절하게 물었다. 치즈버거를(미니 치즈버거를 말이다) 두 조각으로 잘라주기를 원하느냐고.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20여분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친절하게도 내가 시킨 미니 햄버거 바스켓을 둘로 나눠서 남편과 내 앞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먹을 생각이 전혀 없다던 남편이 앞에 놓아준 프렌치프라이를 하나 집어 먹더니 눈이 둥그레진다. 나도 얼른 먹어보았다. 내 눈도 동그래졌다. 너무너무 뜨거워서 입 속에서 호호 불면서 먹었다. 이쑤시개로 고정해 놓은 미니 치즈버거의 높이가 족히 10센티는 되었는데 신선하고 풍성한 야채들이 가지런히 얹혀 있고 옅은 미색의 기름종이에 얌전히 싸여 있었다.
햄버거는 음식으로 치지도 않는 남편이 한 입을 베어 먹더니 감탄을 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햄버거에 어울리지 않지만 다른 표현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았다. 입에 착착 붙는다고 해야 할까?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터라 아쉽게도 우리는 그 맛난 치즈버거를 또 먹을 기회를 못 가진 채 샌디에고를 떠나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별 볼일 없는 작은 동네의 허름한 식당이 검색으로 나올 기대는 안 하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해봤다.
놀랍게도 호댓에 관한 정보는 구글에 여럿 올라와 있었다! CNN이 뽑은, 미국에서 햄버거 맛있게 하는 5대 식당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서부에서는 유일하게 뽑힌 곳이라고도 했다. 아무리 숨어 있어도 보석은 빛을 발하는구나!
이영옥 / 수필가·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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