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에 사는 우디 알렌으로부터 한 줄짜리 편지가 날아들었다. “상을 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을 당신들이 잘 아는 못돼 먹고 작은 배은망덕 자에게 왜 당신들이 상을 주겠는가-그런데 한편으론 당신들 날 좋아하지.”
이 글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지난달 15일 우디가 감독한 ‘파리의 자정’을 골든 글로브 작품상(코미디/뮤지컬) 후보로 발표한 뒤에 보내온 것으로 자기 영화에게 상을 달라는 당부를 위트 있게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우디는 편지를 HFPA 전 회원에게 보냈는데 과연 오는 15일에 거행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그의 부탁이 이뤄질지는 두고 볼일. 그런데 이미 최종 투표를 마친 나는 이 영화를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그러나 우디의 편지와 내 선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우디는 지난 2008년에도 자기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를 미는 글을 우리에게 보낸 적이 있다. “난 생애 한 번도 골든 글로브를 탄 적이 없어. 이건 당신들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라는 반 공갈조의 글이었다. 이 영화는 우디의 소원대로 작품상(코미디/뮤지컬)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지 우디의 공갈 편지 때문은 아니다.
매년 연말 시상시즌이 되면 감독, 제작자, 각본가, 배우 및 작곡가들로부터 자기들의 영화를 골든 글로브상 후보로 뽑아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와 카드들이 우리들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편지와 함께 포도주와 초컬릿 그리고 꽃과 책같은 작은 선물들이 배달된다.
지난 11월 배우들과의 기자회견 차 뉴욕에 갔을 때 ‘파리의 자정’의 배급사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조촐한 리셉션에 우디가 불쑥 나타난 것도 골든 글로브를 노린 일종의 로비활동이었다.
난 우디를 보자마자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우선 그의 아내 순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순이 이즈 굿”이라는 우디에게 “당신 한국 음식 먹어 봤어”라고 물었더니 우디는 “난 너무 매워 못 먹지만 순이는 딸과 함께 한국식당을 즐겨 찾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이어 나이 먹고 쇠약한 토끼의 놀란 눈을 한 우디에게 “당신 요즘 계속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영화를 찍는데 한국에서 만들 생각은 없어”라고 물었다. 우디는 이에 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봐, 누군가 체크를 갖고 와 사인을 해야 영화를 만들지 그냥 어떻게 만들어”라고 핀잔을 주었다. 내가 자꾸 이 질문 저 질문을 하자 우디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사진) 정색을 하고 “후 이즈 디스 가이”라고 말해 모두들 깔깔대고 웃었다.
자기 영화를 뽑아 달라고 로비를 하는 것은 비단 우디 뿐만이 아니다. 마도나도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각기 자신의 영화음악(W.E.)과 작품(내가 사는 피부)을 해당 부문 후보로 선정해 달라고 당부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지 때문은 아니겠지만 두 사람의 소원은 일단 이뤄졌는데 과연 최종 영예를 걸머쥘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할 일.
‘워 호스’로 작품상(드라마)과 감독상 그리고 ‘틴틴’으로 만화영화상 후보에 오른 스티븐 스필버그는 “내 영화에 영광을 돌려준 것이 참으로 멋지다”면서 “내 영화에 대한 후원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감사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휴고’로 역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르세지도 “당신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후보로 올라 지극히 감동했다”면서 “내게 명예를 안겨줘 감사한다. 1월15일에 만나기를 기대한다”는 글을 보내 왔다.
또 만화영화 ‘노미오와 줄리엣’의 노래 ‘해피 해피’를 불러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엘튼 존은 “후보로 지명해 줘 감사한다. 믿을 수 없는 영광”이라며 고마움을 표해 왔다. 그리고 ‘영 어덜트’로 여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샬리즈 테론도 “내게 영예를 줘 진심으로 고맙다. 다시 한 번 나를 인정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엽서를 부쳐왔다.
‘J. 에드가’로 남우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부터도 “지원해 줘 감사한다”는 친필 카드가 날아 왔다. 베이징에서 배달된 국제우편은 우리가 장이머 감독의 ‘전쟁의 꽃들’을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해 제작사인 신화면영업유한공사가 감사를 표해온 것.
많은 편지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헬프’에서 백인 집의 흑인 하녀로 나와 조연상 후보에 오른 옥타비아 스펜서의 글. “앨라배마 태생의 이 작은 여자의 꿈을 이뤄준 것에 감사한다”는 친필로 적은 속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들 외에도 하비 와인스틴, 제프리 카젠버그, 그래엄 킹, 대니얼 래드클립, 케네스 브라나 및 알렉산더 페인 등도 ‘해피 할러데이스’ 인사를 겸한 글을 보내왔다. 친필도(아무래도 정이 더 간다) 있고 복사한 것도 있지만 어느 듯 해마다 이때가 되면 기다려지는 글들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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