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내가 본 영화는 모두 345편. 그러나 이 중에서 영화를 보면서 ‘바로 이거다’라고 느낀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하와이를 무대로 한 기족 드라마 ‘후손들’(The Descendants·사진) 하나뿐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올해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질적이나 예술적인 면에서 볼 때 2011년의 할리웃은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부실한 영화들이 양산된 해였다. 그런 탓인지 지난 27일 현재 올 한해 극장 매표수도 작년 동기 대비 4%가 떨어진 상태. 연말에 오스카상을 노리고 개봉된 여러 편의 영화들도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이어서 현재로선 과연 어느
영화가 작품상을 받게 될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올해 나온 영화 중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두 영화 ‘예술가’(The Artist-프랑스 무성영화)와 ‘휴고’(Hugo)는 모두 영화의 시원과 그것의 마법적 힘 그리고 옛 영화에 바치는 헌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은 또 무성영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영화의 초창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역시 호평을 받은 또 다른 2편의 영화 ‘멜란콜리아’(Melancholia)와 ‘대피’(Take Shelter)는 모두 세상 종말을 얘기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들 영화만큼이나 칭찬을 받은 올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 ‘생명의 나무’(Tree of Life)가 생명과 우주의 생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상기 두 영화와 눈에 띄는 대조를 이룬다.
오스카를 겨냥하고 나온 영화들로 J. 에드가 후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전기 ‘J. 에드가’(J. Edgar)와 칼 융과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관계를 그린‘위험한 치료법’(A Dangerous Method)은 너무 말이 많고 샬리즈 테론이 주연하는 ‘영 어덜트’(Young Adult)와 9.11테러 후유증을 소년의 눈으로 본 ‘익스트림리 라우드 앤 인크레더블리 클로스’(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는 플롯이 너무 조작적이다.
스필버그의 전화 속에 꽃피는 소년과 그의 애마 간의 사랑을 그린 ‘워 호스’(War Horse)는 너무 감상적이고 조지 클루니가 감독 주연한 ‘아이즈 오브 마치’(The Ides of March)는 개인 복수극 멜로드라마. 그리고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전기 ‘아이언 레이디’(The Iron Lady)는 서술방식과 연출이 모두 허술하다. 냉전시대 스파이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ylor Soldier Spy)와 미 프로야구 오클랜드 A’s의 괴짜 감독 빌리 빈의 전기 ‘모니볼’(Moneyball)은 둘 다 준수하나 상감은 못 된다.
나의 2011년도 베스트 텐을 ‘후손들’을 제외하고 알파벳 순으로 적는다.
1. ‘후손들’-식물인간인 아내 대신 두 딸을 돌보는 남자의 자아각성과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 알렉산더 페인 감독(‘사이드웨이즈’)의 연민과 이해가 가득한 연출력이 심금을 울린다.
▲ ‘카니지’(Carnage)-두 아이의 싸움을 둘러싸고 양가 부모가 화해를 위해 모였다가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 인간 내면의 독성을 폭로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다크 코미디.
▲ ‘드라이브’(Drive)-낮에는 스턴트카 운전사 밤에는 범죄차 운전사인 남자의 실존적 느와르. 무드 있고 폭력적이다
▲ ‘용의 문신을 한 여자’(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스웨덴 거부의 실종 질녀를 찾는 폭로 전문기자와 그를 돕는 반사회적인 컴퓨터 해커 여자의 범죄 스릴러. 동명의 스웨덴 영화의 미국판으로 한기가 감돈다.
▲ ‘헬프’(The Help)-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미 남부의 젊은 백인 여기자가 백인가정 하녀들의 인종차별 증언을 모아 책으로 써낸다. 앙상블 캐스트가 보기 좋다.
▲ ‘멜란콜리아’- 우울증 환자인 젊은 여자(커스튼 던스트가 이 역으로 올 칸
영화제서 주연상 수상)의 악화하는 정신상태와 시시각각 다가오는 지구 종말을 아름답고 운명적으로 대비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 ‘파리의 자정’(Midnight in Paris)-파리와 낭만적이었던 과거에 바치는 우디 알렌의 로맨틱 송가.
▲ ‘수치’(Shame)-섹스 중독자 남자를 통해 인간의 중독증세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대담무쌍한 작품.
▲ ‘생명의 나무’-생명과 우주의 생성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영화로 두 번 이상은 봐야 한다. 테렌스 맬릭 감독.
▲ ‘비올레타 천국에 가다’(Violeta Went to Heaven)-칠레의 민초 여가수 비올레타 파라의 척박하도록 사실적인 전기.
이 밖에 섹스와 폭력과 종교와 가족 그리고 사랑과 팬티에 관한 4시간짜리 얄궂은 일본 영화 ‘러브 익스포저’(Love Exposure)와 3만2,000여년 전 인간이 그린 동물벽화가 있는 프랑스의 동굴을 찍은 기록영화 ‘잃어버린 꿈들의 동굴’(Cave of Forgotten Dreams)이 기억에 남는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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