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옵는 형제자매님들,
오늘 날짜로 제가 부질없이 보내드렸던 ‘좋은 글 배달하기’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행여 소문에 들으셨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만, 저는 최근에 위암과 간암으로 판정 받아 나날이 쇠잔해 지는 몸을 이끌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혼자만 아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늘 여러분에게 고백합니다.
제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여러분에게 짐이 되어 드린 일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저에게 얼마 남지 않은 날 수 나마 하늘에 부끄럽게 살지 않고, 나에게 생을 허락하신 우리 큰님께 머리 조아리며 귀여운 자식으로 있고자 하는 저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시옵고 부디 저를 여러분의 일상의 기억에서 없애주시옵기 간절히 청하옵니다. 일일이 문안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시옵고,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시옵기 축원하옵니다. 이요셉 드림>
산타크루즈를 떠난 지 팔년이 넘고있다. 미국 생활 중 가장 오래 살았던 곳으로 늘 고향 같은 곳이다. 떠나며 돌아 갈 것을 약속했던 때문일까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머물고 그리운 사람들도 많다. 살면서 인생의 조언을 가장 많이 해 주셨던 대부님, 이요셉. 우리가 콜로라도로 이주를 해 오던 비슷한 시기에 샌디에고로 이사를 가셨다. 가끔 이메일로, 전화로 안부를 전하곤 하였다. 마지막 이메일에선 나즈막하고 느린, 그러나 지혜가 넘치는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이메일에는 누구에겐가로부터 받은 듯한 첨부파일도 들어 있었다.
<보왕삼매론 (寶王三昧論)>. 아름답게 삽화 된 절 풍경이 시야에 들어 왔다. 첫 구절이 내 마음을 때렸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미처 다음 구절은 살 펴 볼 겨를도 없었다. 떠나심을 준비하는 그분의 자세가 보통의 우리들과는 달랐다. 급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동응답기만 돌아갔다. 그리고 거의 매일 전화를 시도하였으나 끝내 한 통도 연결 되지 않았다.
그 이메일 발송 후에는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으신 것 같다. 그리고 3달 후, 산타크루즈의 교우로부터 대부님의 장례식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대부님과는 꼬불꼬불 구비치는 산길인 하이웨이 17 번을 함께 넘어 다녔었다. 산호세 성당 본당 25주년 창간 잡지를 만들면서 그분의 해박한 종교적 지혜에 놀랐고 그 깊은 신심에 감동했었다. 대부님은 자동차 여행을 좋아 하셨는데 대개는 중간에 하루 밤을 묵어야 했다. 트럭의 짐칸을 임시 침대로 개조하여 잠을 잤고, 밤공기가 찰 때는 불을 피워 돌을 달궈서 수건에 싸 발치에 두어 그 온기로 밤의 냉기를 이겼다.모하비 사막 어느 길옆 캠프장에서 본 밤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쏟아질 듯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보며 마음의 풍요로움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단다. 언젠가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에 글을 몇 편 기고 하셨는데 이때 느꼈던 마음의 풍요로움을 "엄청난 부자" 라고 표현하셨다. 진정 마음이 부자였던 그분이 떠날 때는 그 무엇에도 미련을 두지 않았고 모든 이와의 관계에 정중한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병이 있는 것조차 감사 할 수 있었던 그분의 뜻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병원, 특별히 중환자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마지막의 모습은 참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죽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환자가 죽으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연금 등의 이유로 환자의 죽음을 가로 막고 서서 끌까지 살려 내라고 생떼를 쓰는 가족들도 있다.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게 야박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땐 죽음을 앞에 두고 거래를 하는 것 같아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짧은 소풍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편안하게 가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 그림 속에는 그들이 살아 온 인생여정이 보인다. 얼굴을 찌푸린 채로 죽는 이는 보지 못했다. 중풍의 휴유증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던 사람들도 죽음과 동시에 손을 놓으며 편안해진다.
또 한해가 간다. 문득 그분의 빈자리가 서늘하다. 소복한 눈 꽃이 나무 가지 위에서 흔들린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그분 누워 계신 언덕으로 올라와 맴돌다 간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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