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어달 전,그동안 이십여년간 소식이 끊겼던 사촌 동생과 연락이 닿았다.로스엔젤레스 근교에서 산다는 소식만 들었을뿐 강산이 두번도 더 변할 동안 서로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한국일보에 실린 내 글을 보고,동생이 전화를 해 왔다.그는 큰 외삼촌의 유일한 아들이다.아들을 보고자 외숙모는 딸을 다섯이나 닣으셨다.
예전 우리가 자랄때는 한집에 사촌들과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우리 어머니가 큰 딸이셨기 때문에 우리 집은 늘 사촌들이 살다시피 해서 그애 형제뿐 아니라 이모네 아이들 까지 합세 해서 늘 우리집은 시끌벅끌 했다.명절 같은때는 한번 그들이 오면 며칠씩 묵다가 가곤 해서 방방마다 사람들이 빼꼭이 차고 음식 만드는 냄새와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정말 사람 사는 냄새가 났던 시절이다.
우리 어머니는 열다섯살에 나이가 삼십년이나 차이가 나는 아버지 한테 재취로 시집을 가셨다.아버지는 당시 첫부인을 잃으셨기 때문에 인물이 반반하다고 소문이 난 우리 어머니를 보시고 한눈에 반해 막무가네로 결혼을 서두루셨던 같다.어머니 이전에 열번도 더 선을 보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코 흘리게 외삼촌과 아직 어린 아기였던 이모까지 함께 대동하고 시집을 가셨다.지금 생각하면 기막힌 이야기지만 그 당시는 가능한 일이었던것 같다.그 두 동생들을 길러서 시집 장가 보내고 또 우리 사남매를 낳으셨다.
그래 그런지 살아 생전 어머니는 자신의 두 피붙이뿐 아니라 그들의 소생까지도 끔찍히 아끼셨다.
몇년전 귀국했을때 삼촌의 큰 딸을 만난 적이 있다.어릴때도 늘 몸이 약했고 거기다 소아마비로 다리 까지 절던 애라서 가족들의 보호속에 살던 아이가 아직 살아서 나이가 육십 가까이 됐다고 믿기지 않았다.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데,가정부로 돌아 다니며 사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여 마음이 짠했던 적이 있다.
그애를 보면서 자식이라면 벌벌 떠셨던 삼촌이 아직 살아 계셔 이런 모습들을 보신다면 어떨까 하고 또 한번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다.사촌과 통화를 하면서 그가 팔십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후 한번도 고국에 귀국한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남들은 적어도 이삼년에 한번씩은 고국을 다녀오는데 왜 그는 한번도 가질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았다.사는 것이 너무 바빠서일까 아니면 여유가 없어서 일까.
그애처럼 많은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왔지만 사실은 모두 잃어버린 세월 속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지금처럼 고국이 잘산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민 보따리를 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이곳 낯선 땅에서 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면 아마 고국 땅에서도 소위 말하는 성공을 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한참 흐른후에 우리들은 어떤 선택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고 아리송 해질때가 있다.그 당시는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서 후회도 되고 좌절이 될때가 많다.
잃어버린 세월,그 속에서 한치의 후회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나와 내 사촌은 잃어버린 세월 속에서 남보다 더 못한채 서로를 알지 못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다.생각해 보면 쓸쓸하게 흘려보낸 시간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중 육백만불의 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치매로 며칠전 양로원에 끌려간 노인이 있다.자기가 살던 집이 가까이 있어서 정신이 들때면 자기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고 몰래 그곳을 도망쳐 나오려다 번번히 잡혀 돌아가는 불쌍한 노인의 얘기를 듣고 그가 가진 부가 하나도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이로닉 하다고 생각했다.
슬하에 자식도 없는 그 노인은 죽으면 그가 살던 집은 저절로 스테이트로 넘어 간다고 했다.
한때는 해군 소장까지 지냈던 당당했던 그가 이제는 자기 의사대로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기가 막히고 일생을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뫃았을 그가 마지막 가는 길엔 그 돈이 조금도 도움이 될수 없다는 사실조차 그가 모르기에 인간의 어리석음과 허망함에 다시 한번 가슴이 저리다.
한 두어달전 일본인 아내를 잃고 그의 삶은 그야말로 곤두박질 쳤다.치매는 영혼을 잃어버리는 병이라서 암보다 더 무섭다.영혼을 잃은 인간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수 없다.그는 이제 양로원에 갇쳐서 잃어버린 세월속에 살게 될 것이다.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몇년전 구십 일세로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났다.마지막 만나던 날에 그녀는 계속 "렛츠고!"렛츠고!하면서 휠체어를 밀고 문쪽으로만 가려고 했다.아마 아믈아믈한 기억속에서도 자신이 오십년도 더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셨던것 같다.그 조그만 오두막 집으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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