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은 영화의 힘을 잘 알아 이것을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랬고 이들 못지않게 영화의 힘을 터득한 독재자가 얼마 전 사망한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하고 또 그것을 통치수단으로 쓴 사실은 내가 지난 1991년 평양의 조선 예술영화 촬영소를 방문했을 때 직접 북한 영화인으로부터 들어 안 바 있다. 그 때 나는 재미 경제인 조국방문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었다.
방문일정 중 하나로 북한 최대 종합촬영소인 조선 예술영화촬영소를 찾았을 때 우리를 안내한 공훈배우 김선남씨(기량과 봉사도에 따라 공훈 및 인민배우 호칭이 붙는데 인민배우가 한 단계 높다)는 “조선에서 예술가는 존경받는 직업”이라며 “특히 김정일 동지는 영화를 통해 인민을 교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에 더 애착을 둔다”고 김정일의 영화 사랑을 찬양했었다.
김씨는 이어 김정일의 영화 사랑을 강조나 하듯 “김정일 동지가 영화예술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그 동안 이곳을 304여회나 방문, 2,400여회에 걸쳐 지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은 1960년대 만든 ‘피바다’를 비롯해 몇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이들은 모두 사상위주의 대하 역사물들. 물론 북한에서 만드는 모든 영화는 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2만여편의 영화를 수집한 김정일은 디즈니영화와 만화영화의 주인공 대피 덕 그리고 제임스 본드 영화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김정일은 한국계 배우 릭 윤과 윌 윤 리가 나온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이 악의 국가로 묘사된 것에 대해 노발대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이 영화보다 더 불같은 화를 낸 영화가 성인용 인기 TV 만화영화 시리즈 ‘사우스 팍’을 만든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의 꼭두각시 북한 풍자극 ‘팀 아메리카: 월드 피스’(사진).
여기서 김정일은 고독한 미치광이 지도자로 나와 유엔 무기사찰 단원을 상어 밥으로 제공한 뒤 “나는 너무나 고독하고 아무도 날 진지하게 대해주지 않는다”며 신세타령 노래를 부른다. 채플린의 히틀러 풍자영화 ‘위대한 독재자’가 우습고 지적이며 품위가 있다면 ‘팀 아메리카’는 섹스 신까지 나오는 노골적이요 상스럽고 야한 야유 극으로 아주 재미있다.
김정일은 지난 1978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 최은희와 그의 남편 신상옥 감독을 납치해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게 했을 정도로 영화 미치광이였다. 둘은 북한에서 ‘불가사리’ 등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든 뒤 지난 1986년 비엔나를 통해 북한을 탈출했었다.
나는 평양 촬영소를 방문했을 때 북한 영화인들에게 신상옥씨에 관해 물었다가 크게 야단을 맞았었다. 그들은 “평양 시내 신필름 예술영화촬영소까지 따로 마련해 주고 그렇게 대접을 잘 해 줬는데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며 “언젠가 우리가 그를 단죄할 것”이라고 흥분들을 했었다.
그런데 김정일은 지난 2005년에는 북한의 영화제작 상태에 대해 크게 불만, 8개월간 영화제작을 전면 중단시킨 뒤 영화제작자들에게 자기가 직접 고른 25편의 세계 명화들을 보고 배우라고 지시를 하기도 했다.
북한의 모든 것이 다 그렇듯이 북한 영화도 주체사상에서 시작해 그 해석으로 끝난다. 다만 오락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어서 재미있게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것이 다소 특이한 점. 이런 북한 영화의 기본정신은 나의 평양 체류 때 조선 예술영화촬영소 지도원이었던 리종덕씨의 “순수 오락영화는 의의가 없다”라는 말에서 여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당시 평양 시내 대동문 영화관이나 개성 영화관에 나붙은 ‘님을 위한 교향시’나 ‘임진왜란’ 및 ‘붉은 기 아래’ 같은 간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북한에서는 코미디나 순수 애정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인민들이 외화를 볼 기회는 극히 적다고 북한 영화인들이 알려줬었다.
내가 평양서 묵은 고려호텔에서 TV를 통해 본 북한 영화들은 모두 영웅적 항일투쟁이나 인민을 위해 불굴의 의지로 간척사업을 하는 영웅적 동지들을 찬양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지난 2001년 도쿄의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려고 가짜 여권으로 일본 입국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뒤로 아버지의 눈에서 벗어나 현재 마카오에서 살고 있다. 디즈니 좋아하기는 부전자전인가 보다. 그리고 김정일의 ‘어린 후계자’ 김정은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매 2년마다 평양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는 검열을 통과한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은 외국 영화들도 상영된다. 제13회 영화제는 2012년 9월20일 부터 27일 까지 진행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