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정 희 논설위원
어바인에 사는 한인 부모가 15살짜리 아들의 소지품에서 라이터가 나오자 친지에게 체벌을 부탁한 사건이 지난 주 꽤 논란이 되었다. 주류사회 매스컴들이 줄줄이 사건을 보도했고, 네티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댓글을 달았다.
보도 내용을 보면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혼내주기 위해 멀리 치노 힐스까지 운전을 해서 같은 교회 교인을 찾아갔다. 39세의 이 남성은 라이터에 대해, 필경 흡연여부에 대해 소년을 추궁했고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되자 직경 1인치 쇠파이프로 10여 차례 매질을 가했다.
모든 것이 아이 아버지의 승인 하에 이뤄졌고, 그 남성이 이런 식으로 체벌을 대행한 것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몇몇 교인들이 이미 그에게 자녀 체벌을 맡겼던 것으로 수사당국은 전했다. 그는 지난 6일 아동학대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이틀 후 풀려났다.
주류 사회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어떻게 내 아이를 남을 시켜 때리게 하나” “겨우 담배 피웠다고 쇠파이프 매질을 하나” 하며 그 부모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체벌을 가한 사람과 부모가 같은 교회 교인이라는 사실을 두고 광적인 근본주의 종교단체의 가학 행위로 보는 엉뚱한 해석도 있었다.
아이가 라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쇠파이프 매질까지 가한 ‘훈육’은 분명 도가 지나쳤다. 이런 과잉대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 청소년 문화에 낯선 이민1세 부모의 과도한 불안감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자녀 키우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가” 하며 자신하던 부모들이 갑자기 겸손해지는 시기가 있다. 자녀가 사춘기가 되는 시점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들이 찾아들면서 대개의 부모들은 부모노릇의 어려움을 절감하게 된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도 그런 부모 중의 한사람이었다. 쌍둥이 딸들이 미성년 나이에 술을 마시다 적발 되는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던 때였다. “딸들 키우는 게 전쟁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고 그는 푸념을 했었다.
고분고분 말 잘 듣고, 학교 공부 착실히 하고, 부모 칭찬 받으려고 온갖 예쁜 짓을 다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 180도 바뀌면 부모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말수가 적어지고, 눈길을 마주치려 들지도 않고, 뭔가 지적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 “저 아이가 내 아이 맞나?” 싶게 벽이 느껴지는 아이를 바라보며 부모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특히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은 한인 부모들은 불안감이 증폭되며 온갖 상상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가방에서 라이터가 나오거나, 옷에서 무슨 풀냄새 같은 게 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리고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한인부모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과민반응이다.
그 자신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한인 아버지들은 우선 화부터 내기 일쑤이다. 그리고는 “따끔한 맛을 보여서 다시는 나쁜 짓 못하게 하겠다”며 무섭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어바인 소년의 아버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데려가 호된 벌을 받게 해서 비행 초기에 아이를 바로 잡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하지만 부모가 너무 무서우면 아이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옛날 동네에 가깝게 지내던 백인 가정이 있었다. 부부가 모두 대학 교수인 교육자 집안이었다. 당시 큰딸 니콜이 고교생이었는데 사춘기 방황이 대단했다. 입술에 새까만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괴상하게 염색하고, 느닷없이 코걸이를 하고 나타나는 가하면, 방안을 까맣게 페인트칠하고, 줄담배를 피우고 … 옆에서 보기에도 불안할 지경이었다.
보다 못해 어느날 “사춘기 아이 키우기 얼마나 힘드냐”며 그 부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그는 오히려 미소까지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니콜은 지금 애를 쓰고 있는 거예요. 부모로부터 떨어져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사춘기 지나면 괜찮아 질 거예요.”
10대는 애벌레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불안정한 존재이다. 날개도 돋기 전에 마음은 날고 싶어 ‘금지된 장난’의 유혹을 받는다. 체벌보다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이해하고 감싸 안는 훈육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다. 불안정한 존재일수록 이해받고 싶은 법이다. 부모의 사랑이 깊은, 그래서 존재의 뿌리가 깊은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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