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 저물어간다.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늘 미련을 깔아놓고 사는 인생 탓일 것이다. 이런 아쉬운 철에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꼭 약속을 지켜서 매년 크리스마스가 오면 우리를 찾아오는 산타를 기다리는 것은 비단 철없는 아이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른인 나는 내놓고 산타를 맞이하지는 못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마음은 숨어서 신랑을 엿보는 새색시의 그 것과도 같다. 산타는 어떤 특정한 실체의 테두리를 벗어나 주고 베풀고 감사하며 또 사랑하고 염려하는 인간의 따뜻한 본성과 무언가를 기다리며 바란다는 꿈을 상징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TV에서는 해묵은 크리스마스 영화들을 내보낸다. 어김없이 매년 캘린더 마지막 장을 타고 찾아오는 산타가 반갑듯이 몇 번씩 보아도 즐겁고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영화가 3편이 있다. 이들은 마치 감미로운 노래의 후렴과도 같아 금방 보고 나서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명화들이다.
미국의 국민 감독 프랭크 캐프라가 만든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은 모든 인간은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이 중요하다는 보편타당한 진리를 얘기하고 있다.
작은 마을 베드포드 폴스에 사는 소시민 조지(제임스 스튜어트)가 사업에 실패, 강에 투신자살 하려는 순간 그의 수호천사인 나이 먹은 클래런스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클랜런스는 조지에게 만약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베드포드 폴스가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를 보여준다.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를 깨달은 조지와 그의 아내 메리(도나 리드) 그리고 둘의 어린 4남매를 둘러싸고 동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볼 때마다 내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늘 기억하리라고 다짐하는 내용의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사람들이 신년 전야에 부르면서 송구영신하는 노래. 이 노래는 예전에 G. 클렙스가 ‘아이 언더스탠드’라는 제목의 팝으로 편곡해 불러 빅히트를 했었다.
산타가 진짜로 있다는 것을 가슴 훈훈하고 정감 가득하게 증명한 영화가 ‘34가의 기적’(The Miracle on 34th Street·1947)이다. 맨해턴의 연말 큰 구경거리 메이시즈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전후해 일어나는 코미디 환상영화로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와 정신을 상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메이시 백화점의 상주 산타인 크리스 크링글(산타클로스의 별칭으로 세인트 닉이라고도 부른다)이 산타를 믿지 않는 조숙한 소녀 수전(들창코 꼬마 나탈리 우드)에게 자기가 진짜 산타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진위여부를 가린다는 내용. 꿈과 믿음을 가지라는 아름다운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산타 역의 에드먼드 그웬이 오스카 조연상을 받은 고운 작품이다.
이 두 영화는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단골영화인데 이들보다 훨씬 늦게 나왔지만 어느덧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단골영화가 ‘크리스마스 이야기’(A Christmas Story·1983·사진)다.
이 영화는 해마다 케이블 TV TBS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날에 24시간 마라톤 방영을 해 유명해졌는데 나도 매년 빼놓지 않고 보면서 깔깔대고 웃는다. 보고 있노라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따스한 면 잠옷의 감촉이 느껴지는 영화로 이야말로 산타의 선물이다.
휴머니스트 진 셰퍼드(그가 영화를 해설한다)가 1966년에 쓴 ‘인 갓 위 트러스트: 올 아더스 페이 캐시’(In God We Trust: All Others Pay Cash)가 원작으로 1940년대 클리블랜드에 사는 한 소시민 가족의 삼삼하게 매력적인 얘기다.
주인공은 마음 착하고 다정한 부모 밑에서 어린 남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소년 랄피(피터 빌링슬리). 커다란 안경을 낀 랄피의 평생소원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빨간 레드 라이더 샷건을 받는 것. 그런데 랄피의 엄마가 “너 그것 가지고 놀다간 눈알 빠진다”면서 반대, 랄피는 속만 탄다.
영화는 랄피와 그를 괴롭히는 동네 골목대장과의 눈밭 격투와 검은 망사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여자 다리 모양의 램프에 홀딱 반한 랄피의 아버지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빨간 샷건을 달라고 사정하는 랄피를 구둣발로 밀어버리는 심술쟁이 백화점의 산타 및 분홍 토끼 모양의 털 잠옷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 입고 난처해하는 랄피 등 재미있는 장면들로 연이어진다.
랄피 엄마가 정성들여 잘 구운 터키를 동네 개들이 물어가는 바람에 랄피네 온 가족이 동네 중국식당에서 머리 째 구운 오리고기로 크리스마스 저녁을 대신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손님이라곤 랄피네 밖에 없는 식당에서 중국인 웨이터들이 억센 액센트로 캐롤 ‘덱 더 홀스’를 부르는 모습이 배꼽 빠지게 우습지만 같은 동양인으로서 보기에 다소 민망하다.
한편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져 현재 전미 5개 도시 순회공연 중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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