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연히 셜리라는 중국계 미국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수십년을 뉴욕주에서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뜨자 이곳 로스모어로 은퇴를 했다고 한다.이곳에 사는 재미중 하나가 각계 각층의 사람과 여러 다른 인종들을 만난다는 사실이다.그녀는 내게 남편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당신은 남편에게 하루 한번씩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그렇지 못하다고 했더니 지금부터라도 꼭 그말을 하고 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자신은 남편이 죽자 제일 가슴 아프고 후회되는 일이 바로 그말들을 하면서 살지 못한것이라고 했다.그녀의 남편은 학벌도 높고 똑똑했지만 좀 까다로운 성격이라서 무엇이던지 일일히 참견을 하고 지적하는 스타일이어서 솔직히 살아 있을때는 피곤하기만 했는데 정작 남편이 떠나자 그에게 고맙다고,사랑한다고 말 하지 못한것이 그렇게 후회되고 한이 될줄은 미처 몰랐다는 얘기였다.
몇년전 방영된 한국 연속극중 "있을때 잘해"라는 제목의 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다.그때 마침 한국을 방문중이던 나는 그 제목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늘 같이 옆에 살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우리들은 잘하기 보다는 어느땐 무심하고 어느땐 서로 상처를 입히면서 살고 있다.옆에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히 그렇게 살줄 알고,감사하거나 고맙다는 생각보다 좀 만만하게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고 살갑게 굴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이 있다.
그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습관성 같은 무심함 때문이리라.그날 그녀의 충고를 받고 나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우리 한국인들의 정서는 미국인과 달라서 많은 것을 표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끼고 사는 것이 덕목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늘상 아이 러브 유를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인들이 오히려 경박하게 느껴질때가 있었다.
요즘 남편의 심장이 규측적으로 뛰지 않는다고 의사에게 경고를 받고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친구들과 만나도 이야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정작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거나 고맙다던가 미안하다던가 하는 말은 인색한 편이다.남편은 요즘 의사에게 야단을 맞고나서야 자신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아침마다 산책도 하고 음식도 조절하는등 자신의 건강에 관해 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남자들은 아내가 하는 좋은 충고도 무조건 잔소리라고 듣지도 않고 화를 먼저 내는 것도 부부 사이에 원만한 대화를 중단하게 만드는 요인중 하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다.자신의 핏줄도 아닌 우리 두 아들을 자신의 자식과 똑같이 대하고 키워주고 대학까지 보내준 사람이다.처음 아이들이 미국에 왔을때 한마디 영어도 못해서 우리 집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같았다.그 힘들었던 세월을 다 함께 잘 넘기고 이제는 모두 잘 살고 있어서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남편에게 큰 빚을 졌고 마음 속으로는 늘 고마워 하지만 정작 그것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남의 자식을 키우는 사람들은 참 팔자가 센 사람들이다.자신들이 낳은 자식들은 마음 놓고 야단치고 화를 내도, 한다리 건넌 남의 자식들은 눈치가 보인다.왠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욕을 먹을수 있는 확률이 더 크다.한번은 내가 말을 잘못해서 당신의 두 아이라고 했다가 왜 네 아이지 두 아이냐고 남편이 크게 화를 내서 혼난 적이 있다.그날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부끄러웠고 또 한편 크게 고마웠던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땅 덩어리가 커서인지 마음들이 넓은 편이고 한국인들은 그에 비해 정은 많은데 타인들에 대해서는 인색한 편이다.아직도 미국에 입양되는 아이들중 한국아이들이 제일 많다고 하는 기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나는 동창들이 뫃이는 모임이나 교회나 또 이런저런 이유로 외출하는 기회가 많은것에 비해 남편은 그로서리를 보던지 도서관에 가는 것을 빼놓고는 별로 외출하는 적이 드믈다.요즈음은 "어디를 가느냐"몇시에 돌아오느냐"로 늘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던 것이 오늘 당신의 스케줄은 무엇이냐고 이젠 능청스럽게 묻고 대처하는 법도 배웠다.
이젠 나도 좀 변해야겠다.더 늦기전 당신이 멋져!당신이 최고야!땡큐!아이 러브유!당신이 살아있어 고마워!이런 말들을 하며 살아야겠다.약간 닭살처럼 몸이 근질근질 하기는 하지만 이런 말들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면 나는 살아 있을때 그 말들을 하며 살 것이다.
있을때 잘하세요./한번 가면 그만인 인생살이/아직 옆에서 그가 숨쉬고 있을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더 늦으면 가슴 치고 울어도 소용없어요/아직 옆에 그가 살아 있을때/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오늘 꼭 말해주세요/당신이 있어 고마웠다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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