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상원 민주당의 해리 리드 원내총무는 연방 부채 감소를 모색하기 위해 구성되었던 상하 양원의 특별위원회가 실패한 것을 두고 “아마도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를 탄핵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또 그 위원회의 위원이었던 존 케리 상원의원(민주·매사추세츠)도 노퀴스트를 12명 의원들의 회합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6명의 공화당의원들에게 무언의 영향력을 행사한 ‘13번째 위원’이라고 불렀다.
대통령을 위시한 연방 고위직에게만 적용되는 탄핵 가능성 언급을 받은 노퀴스트는 누구인가? 그는 선출직이던 임명직이든 공직은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보수계 로비스트 겸 이론가이다. 1956년생이라니까 만 55세인 노퀴스트는 하버드(학사와 경영학 석사)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일 때부터 보수 성향을 나타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 후 공화당의 대학생들 조직에 적극 참여하였고 전국 납세자 연맹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다음 미국 상공회의소의 경제학자 겸 수석 연설문 작성자 노릇도 잠깐 한 적이 있다. 노퀴스트는 1985년에 ‘세금 개혁을 위한 미국인들(ATR)’이라는 로비 겸 정책 추진 조직을 세우면서부터 그의 영향력을 넓혀 왔었다. ATR의 최우선 순위 정책의 목표는 연방 정부가 소비하는 국내 총생산량의 비율을 줄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ATR은 모든 세금의 증가를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리고 정부의 지출을 줄여야한다는 입장이니까 빈곤층에 대한 민주당의 사회 안전망 유지 내지 확대 정책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노퀴스트는 ‘납세자 보호서약(Taxpayer Protection Pledge)’이라는 문건으로 유명해졌다. 왜냐하면 연방하원 공화당 의원 242명 중 238명 그리고 연방 상원 공화당 의원 47명 중 41명이나 개인과 기업의 세금을 올리자는 어떤 노력도 반대하는 그 문건을 지지하겠다고 서명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2012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 경선자 7명도 하나만을 빼고는 그 문건을 지지한다. CBS의 ‘60분간’이란 시사 프로그램의 스티브 크로프트가 “노퀴스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공화당의 교리를 다시 쓴 장본인이다”라고 평한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12명의 특별위원회의 위원이었으나 내년에 출마하지 않기 때문에 공화당계 유권자들에 대한 노퀴스트의 영향력을 걱정 안 해도 되었을 존 카일이 그 위원회가 양당 간의 타협을 이루는 것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파괴분자라고 비난한 워싱턴 포스트의 대나 밀뱅크 칼럼니스트도 카일에 대한 노퀴스트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한다. 폴리티코지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카일 의원이 세금 인상의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언급을 했을 때 노퀴스트가 카일에게 전화를 걸어 선생이 초등학교 2학년생에게 야단치는 어조로 꾸짖었기 때문에 카일이 정신을 차려 공화당은 어떤 세금 인상도 반대한다는 연설을 했다는 내용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 의회의 교착 상태는 점점 굳어질 것만 같다. 공화당은 부시의 감세를 영구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부유층 특히 억만장자들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는 워렌 버핏 등의 주장을 일소에 부친다. 민주당은 서민층에 대한 실직수당이나 사회연금과 의료보조금 등의 법에 의한 혜택(entitlements)을 줄이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도 15조에 달하는 미국의 부채를 감소시키기기 위해서는 법에 의한 혜택도 개혁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양보하는 반면 세금 인상도 고려에 넣어야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특별위원회가 실패하였기 때문에 모든 예산이 자동적으로 삭감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내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당에게 유리할 모든 타협은 거부하게 될 것임으로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 전망도 어둡기만 할 것 같다.
오바마는 무활동 의회(Do Nothing Congress)를 공화당의 책임으로 돌려 자신에게 4년의 기회를 더 달라고 하겠지만 무활동 의회의 반(상원)에는 민주당이 다수당이니까 그런 주장이 제대로 먹혀들어 갈는지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과반수면 입법이 되는 하원과 달리 미국 상원은 의원의 의사진행 방해 권리 행사(filibuster)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51명의 단순 다수가 아니라 60명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전통과 관례가 있기 때문에 주요 입법에 있어서 한 당에 60명 이상의 의원들이 있을 때만 다수당으로서의 명실상부를 기할 수 있다는 현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상원 자체가 1인1표의 민주적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인구가 3,700만이 넘는 캘리포니아주나 인구가 56만이 조금 넘는 와이오밍도 상원의원들은 둘이니까 말이다. 워싱턴 DC의 60여만 인구는 아예 상원의원들을 뽑을 권리조차 없지 않은가. 미국 민주주의의 ‘비민주성’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할까 한다.
(지난 주 칼럼의 수퍼볼은 슈가볼의 오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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