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달러를 갖고 20명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받았다. LA 한인타운에 사는 독자, 손온유 씨의 편지였다. 그는 자신이 몇 년 째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선행’의 비법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돈으로 계산하면 별 것 아니지만 그 일을 하면서 많이 행복”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20명을 기쁘게 하고 그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그 일’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찐 계란 선행’이다. 매일 아침 계란 40개를 쪄서 LA 다운타운 공장가로 나가 노숙자나 막노동하는 사람들 20명에게 나눠주는 일을 그는 소명처럼 하고 있다. 근무지가 다운타운인 그는 남매 키울 때는 앞뒤 돌아볼 틈이 없더니 그들이 자라 독립하고 나자 다른 사람들의 안 된 처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 했다.
“막노동 일꾼들은 주로 공장건물 뒤 바깥에서 일하는 데 거긴 굉장히 추워요. 홈리스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갓 쪄낸 계란을 두 개씩 냅킨으로 싸서 샌드위치 백에 넣어 나눠주면 그 온기가 4시간은 간다고 한다. 도매상에서 한 알에 10센트 꼴인 계란이 아침 6시부터 일어나 준비하는 그의 손길을 거치면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식사가 되고, 시린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온열기도 된다. 사랑이 더해지니 계란이 그냥 계란이 아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본격적인 연말로 접어들었다. 연말은 ‘끝’을 생각하는 계절. 한해의 끝 앞에 서면 언젠가는 마감될 우리 생의 끝을 또한 생각하게 된다. 지난 한해, 지난 한 생애 무엇을 하고 살았나 되돌아보게 되는데, 앞의 손씨처럼 ‘이런 선행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할 게 있는 사람은 복되다.
대개는 무겁게 의식을 짓누르는 재정적 불안감 속에서 ‘오늘도 무사히’ ‘이 달도 무사히’ … 하며 허둥지둥 한해를 보냈을 것이다. 불경기를 살아낸 것만도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 생애가 나 한 몸 사는 것으로 끝난다면 덧없다. 나로 인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마도 생은 그런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빈민들 돌보기에 평생을 바친 마더 테레사는 ‘평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임종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의 양이 아니라 그 일에 쏟아 부은 사랑의 무게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웃 돌보는 ‘그 일’에 얼마나 사랑의 마음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도 거리거리에 버려진 하층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마음속 고통의 얼룩을 닦아주는 일에 몸 바쳤던 그는 그래서 ‘사랑은 걸레’라고 했다. 세상의 얼룩을 닦아내는 행위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인타운에도 ‘거리의 걸레’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 있다. 우리 신문의 오랜 독자 김연휘 씨가 한 70대 한인남성의 선행을 알려주었다. 그분은 절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성함도 밝힐 수가 없다.
“매일 아침 6시반에서 8시 쯤 호바트와 2가 부근을 지날 때면 항상 그분을 봐요. 플래스틱 봉지와 집개를 들고 다니면서 담배꽁초며 휴지, 뒹구는 나뭇잎들을 줍지요. 몇 년 째 꾸준히 청소하시는 모습을 보니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어요.”
하루 20개의 찐 계란, 거리의 담배꽁초 줍기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물방울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대한 바다도 시작은 물방울이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 돈, 정성을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다면, 그런 지속가능한 선행들이 모여서 사회가 훈훈해 질 것이다.
다운타운에 가면 누구에게나 ‘마미’로 통하는 손씨는 말한다. “적은 돈으로 하는 선행이니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계란 두알 받고 반짝반짝 기뻐하는 눈동자들이 얼마나 예쁜지, 그걸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전화 통화 중 그는 계란 찌는 비법을 독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우선 계란을 찜통에 조심조심 담은 후 중불로 찐다. 15분쯤 후 김이 확 나면 이때 불을 아주 낮게 줄여서 40분쯤 굽는 것이 요령이다.
“어둠을 욕하기보다 촛불 한 자루를 켜는 게 더 낫다”는 인도 격언이 있다. 세상의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어도 우리 각자 촛불 하나는 켤 수가 있을 것이다. 선행은 이벤트가 아니다.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할 때 지속가능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