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였다. 한 중국인 유학생을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당시 중국과 미국이 아직 정식 국교를 맺기 전이어서 미국으로 유학 오는 게 쉽지 않았을 터인데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박사학위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북경대 출신이었으니 중국에서는 최고의 엘리트인 셈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세계 최고의 탁구 선수가 될 꿈을 갖고 중국의 주니어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다고 한다.
평소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는데 한 번은 한국 동란에 관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란 것이 이 중국인 유학생은 한국 동란이 남한의 북침으로 시작되었다고 배웠고 그래서 자신은 쭉 그렇게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일러주었다. 누구든지 전쟁을 시작하려면 철저히 준비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만약에 남한이 먼저 공격을 했다면 도대체 어떻게 전쟁 준비를 했기에 개전 3일 만에 자기 수도를 상대에게 점령당하는 수치를 겪겠는가. 이런 객관적인 사실만 살펴보아도 한국동란을 누가 시작했는지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남북한 사이의 진실 논쟁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했더니 수긍한다는 뜻을 표해 왔다. 아무리 중국 최고의 엘리트 출신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는 인텔리라도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뒤집힐 수 있는 사실마저 자기가 자라고 배운 환경에 따라 전혀 반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경험이었다.
비슷한 경우를 이번 선거 기간 중 다시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선거가 있기 바로 전 일요일 무슬림 커뮤니티의 기도 모임에서 나에게 인사를 할 기회를 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아침 이른 시간에 두 군데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 기도 모임은 ‘이드알아드하’라는 무슬림 종교 휴일기간을 마치면서 갖게 된 것이었다. 무슬림의 종교적 전통에 대해 별로 아는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우선 인터넷에서 이에 대해 검색해 보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슬림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이브라힘이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드릴 수 있을 만큼 알라에 대한 희생의 마음자세를 가졌음을 기념하는 전통이라고 했다.
기독교인인 나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자신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려 했던 유명한 성경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지라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무슬림이 생각하는 희생 제물은 유대교나 기독교 전통에서 알고 있는 사라로부터 난 이삭이 아니라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다문화, 다인종 배경의 구성원이 모여 살고 있는 훼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으로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도 나의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와 전통,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 한인사회나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리교과서의 ‘동해’ 표기 문제, 1975년에 패망한 남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아직도 베트남의 국기로 여기는 옛 베트남 국기에 대한 예우 문제, 학생들의 겨울방학을 크리스마스 휴가라고 부르지 않는 문제, 그리고 종교적 성일 엄수 때문에 학교에서의 정상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 등 여러 문제들이 어느 쪽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반대의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문화적, 종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할 때도 민감하게 다루어진다. 한 쪽에서 공평하다고 보이는 부분이 다른 시각으로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은 종종 주류사회가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면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 자신들도 우리와 다른 배경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 증진에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우리도 같은 노력을 다른 이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가 생기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 좀 더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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