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말로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가는 교회에 C라는 분과 내가 찰떡궁합인지 모르겠다. C는 낚시를 좋아한다. 반면 나는 낚시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싱싱한 생선회는 꽤나 즐긴다. 그래서 언제나 C는 낚시를 하고, 나는 그저 그가 심심할 때 잠시 말동무나 해주다가 산책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하다가, C가 잡은 생선으로 회나 매운탕을 즐기니, 나한테는 어찌 찰떡궁합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난 10월 말에도 메릴랜드 주 오션 시티 부근에 낚시를 같이 갔었다. 실로 낚시를 즐기는 동안 인터넷이 없고, TV가 없고, 신문이 없으니 참으로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다. 문명의 이기가 꼭 언제나 좋은 것 같지는 않은 듯했다.
그렇게 며칠을 즐기다가 집에 오니 나에게 넘쳐나는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L이라는 분으로부터 10.26 박정희 궁정동 살해 사건 현장이니 어쩌니 하면서 이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또 다른 L씨는 박정희-유신 독재-한나라당-나경원 후보를 일직선상에 놓고, 반독재 타도-시민 항쟁-시민단체-박원순을 반대 축으로 세운 뒤 이번 박원순의 당선이 40년 전 유신 독재로부터 이어온 독재 체제에 종지부를 찍게 한 승리라는 이상한 논법으로 쓴 글을 신문에 올려놓고 있었다.
반면 이곳 워싱턴과 달리 한국에서의 인터넷이나 TV 또는 신문을 보니 어느 곳에서도 이런 것에 관심을 두는 곳은 없었다. 온통 관심은 시장 선거 결과 분석과 20~30대의 불만이 무엇이냐, 무엇을 꿈꾸느냐, 기성 세대와의 가치관의 차이가 무엇이냐, 진정한 복지의 개념이 무엇이냐 하는 등에 있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서로 다른 관심을 보면서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작년 서울을 다녀와서 내가 썼던 글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서울은 50대 이후에 어깨가 축 처진 지구인과 20~30대에 스마트 폰에 함몰된 화성인 있었는데 이미 서울은 화성인이 다 점령해 버렸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워싱턴 사람들은 서울이 아직도 지구인의 나라인줄 알고 50대, 70대의 지구인들 주위를 빙빙 도는 달나라 사람들이라고 썼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 올라와 있는 것을 겨우 참았었다. “당신들은 박정희 하면 아직도 서독에 파견된 광부, 간호사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니, 그의 산업 근대화 노력으로 오늘의 번영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을 화제로 할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서 일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불이 넘었다 어쩐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박정희의 개발 신화나 유신 독재 등에는 이제 아무런 흥미가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국민 소득이 2만 불이라는 그 숫자 자체에 대한 가치와 개념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산업화이니 수출 부국이니 하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현 사회와 자기들에게 끼치는 파급 효과를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한국 다수인들에게 몇 십 년 지난 흥미도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바다 건너 이곳 미국 땅에서 떠들어 대고, 논쟁하고, 흥분하는 것들을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이 그냥 지났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이곳 신문들을 보니까 박원순의 금 숟가락이니 어쩌니 하는 글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는가 하는가 하면, 그렇게 많은 단체가 있었는지 내가 깜짝 놀랐지만 어찌 되었던 그 많은 단체들 연명으로 연평도 포격 일주년에 즈음하여 규탄 대회를 갖는 뉴스를 보았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기사를 보니 한국에 여당, 야당, 시민단체, 심지어 국회의원 몇 명을 후원하는 단체까지 참으로 이곳 워싱턴에 꽤나 많았음을 새삼 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그 단체들이 무엇을 어떻게 후원하고 있는지 잘 납득이 안 되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안 나는 자꾸 갈라파고스라는 섬이 생각났다.
갈라파고스는 중남미 나라 에콰도르 본토에서 1,000킬로 떨어져 있는 외딴섬이다. 그 곳은 어느 섬이나 땅덩어리 하고 가깝지 않아서 그저 그 섬 자체만이 존재해 왔다. 다시 말해서 동식물의 먹이사슬의 균형이 아주 오래 그냥 그대로 지속되었다. 결과 이미 멸종 되어 버린 것들이나, 몇 만 년 동안 진화하지 않은 동식물들이 이곳에는 그대로 살고 있다. 그래서 진화론을 쓴 찰스 다윈이 이 섬에서 영감을 얻었고, 지금도 다윈 연구소가 이곳에 있다.
그렇다 워싱턴의 동포들은 그들의 생각이 40년, 50년 전의 반공과 30년 40년 전의 유신 독재에 그만 갇혀 버렸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고 변하는 데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저 갈라파고스의 마치 200킬로 짜리 거북이 모양 변함없이 서서히, 유유히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워싱턴 교포의 고국, 한국에 대한 사랑, 관심, 염려 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갈라파고스의 거북이처럼 세상의 변화를 몰라 멸종의 대상, 보호의 대상이 될 만큼 무지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사고, 새로운 관심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모국을 사랑하는 것도 새로운 시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결코 갈라파고스의 사람이 돼서는 안 된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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