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 대해 쓰기가 망설여진다. 혹시라도 그가 본다면 “이렇게 너절한 글을 써놓고 읽으라고...” 하면서 신랄하게 질책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가 떠났기에 용기를 내어 쓴다. 그가 본다면 분명 “깔끔하고 완벽하게, 군더더기 없이, 미치도록 매혹적인 그런 것이 아니면 쓰레기다”라고 고함치며 내게 불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신간 ‘스티브 잡스’를 읽기 전까지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잘 몰랐다. 첨단 기술에 대한 열정 혹은 광기만큼이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이 스티브 잡스임을 책을 통해서 알았다.
테크놀러지 제품을 예술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서 누구나 제품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목표였다. 진정한 예술품은 보면 볼수록 빠져들어 깊이 사랑하게 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예술가의 작품은 가까이 두고 오랫동안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는가 보다.
애플의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과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만지게 되는 것이 아이패드이다. 침대 위에서 성경 말씀을 묵상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화제가 되는 영화나 동영상 등을 아이패드로 본다. 가벼워서 화장실에도 동행한다.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애플매장을 가 보았었다. 환하고 멋진 그곳에는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온갖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은색 줄에 매달린 전시용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컴퓨터를 넋을 잃고 사용하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남녀노소가 이 시대 최고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면서 행복해하는 것이다. 아이패드를 예약한 후 일주일을 기다려서 받았었다.
책 사이즈보다 조금 큰 아이패드를 포장한 박스가 아름다워서 버리지 않고 책장 맨 위에 올려두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평소 버리기를 좋아해 모든 물건의 포장은 푸는 즉시 리사이클 쓰레기통으로 가는데 왜 그 박스는 버리기 아까웠는지 ‘스티브 잡스’ 책을 읽는 동안 이해가 되었다. 포장은 물론 기계의 속 자그마한 나사까지 완벽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며 잡스는 애플의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 끝없는 열정을 쏟아 부었다.
애플의 마니아들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계속 새로 산다고 한다. 나날이 발전 되어가는 신상품을 통하여 잡스의 기술적 열정과 예술적인 감각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이 애플 제품에 중독될 만큼 잡스는 자기가 가진 혼신의 힘을 애플의 제품에 쏟아 부었음을 알게 되었다.
엔지니어들의 전기는 보통 기술적인 용어들이 빈번하게 나와서 읽을 엄두도 내지 않는데 이 책은 한 예술가의 생애를 읽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약간의 기술적인 용어도 전혀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기술발전과 경영혁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첫 부분보다는 입양, 성장, 결혼, 가족관계 등 사생활이 담긴
중간 부분을 먼저 시작했다.
첫 장을 편 후 887페이지로 끝나는 두툼한 책을 영감 가득한 소설책을 읽듯이 읽었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떠오르는 상념으로 멈추기를 거듭했다. 지상에서 한 번 뿐인 삶을 나는 너무 건성으로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각을 하게했다. 열정적으로 창의적으로, 아름답게 멋지게 나아가 예술적(?)으로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한국어판을 출간한 민음사는 번역(소프트웨어)도 신경을 썼지만 제본(하드웨어)도 잡스의 완벽주의에 부응하도록 잘 만들었다. 참고문헌을 합하여 928쪽 꼭 2인치 두께인 책의 넘김이 부드럽도록, 모든 책장의 안쪽 2밀리 부분에 세로로 눌린 금이 있었다. 안정감 있게 넘어가며 책이 두터운 데도 쉽게 잘 펼쳐졌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봤다면 미국 책 ‘스티브 잡스’보다 한국 책이 종이재질도 좋고 제본도 깔끔하고 그가 항상 말했던 창의성을 덧붙였기에 더 좋아할 것만 같다. 그리고 아마도 삼성 갤럭시폰이 아이폰의 매출을 넘어선 한국인의 저력도 조금 깨우쳤을 것 같다.
윤선옥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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