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무더위만큼 뜨겁게 언론을 달구었던 아이오와 공화당 대통령 후보 선거가 끝났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 중 제 일인자가 된 미셸 바크만(Michele Bachmann)의 말에 언론이 마치 맹수가 제법 맛있는 먹이를 잡고서는 먹기 전에 이리 저리 그 먹이를 구르듯 그 말의 꼬투리를 잡아 요리조리 맛보는 듯하다.
바크만은 상당히 영향력 있는 여성 대선 후보다. 그리고 공화당 후보이어서인지 보수 기독교인이다.
그 후보가 하기 싫었던 세금 법률 공부를 하게 된 이유를 2006년에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이 그것을 원하였기에 남편에게 순종하기 위하여(to be submissive)였다. 순종이라는 단어를 확인하기 위해 ‘동아 한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순순히 복종한다’라고 되어 있고 영어 사전에는 ‘yield to the power or authority of another’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5년이 지난 후, 공화당 대선 후보 순위 1위가 되니 그 말이 만약 차기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남편의 뜻에 순종하겠냐는 질문으로 다시 화제에 떠오른 것이다. 미소를 얼굴에 담고 바크만은 “순종하는 것은 존경하는 뜻이다”라고 대답하였다.
NBC 간판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Meet the Press’에서 ‘대선 후보와의 만남’이란 제목으로 앵커맨 데이비드 그레고리와 바크만이 만난 적이 있었다. 바크만은 이곳에서 또 다시 거론된 순종이란 질문에 “33년간의 남편과의 결혼 생활로 남편을 존경한다”라는 일관된 대답을 하였다. 이미 한 차례 모든 언론이 그 말을 확대시킨 후라 온 미국인이 주시하는 TV 프로그램에서는 좀 더 기지를 발하는 대답은 없었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말이란 세대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변형되기에 이것이 대선을 앞둔 후보를 겨냥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보다는 어느 후보가 지금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을 위해, 그 과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 다시 한 번 미합중국을 세계의 지도 격으로 이끌어낼 역량 있는 대통령인가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지 않았음이 아쉽다.
언론은 때로는 흥미위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고무하는 질문을 하기에 이것을 대처하는 것도 대선 후보의 자질이겠다.
대학 일학년 때, 사회학 101 과목에서 배운 일의 분배(division of labor)라는 말에 나는 큰 매력을 느꼈다. 남녀 성 차별에 대한 일의 분배가 아닌 일의 분배라는 말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도 차 고치는 일을 할 수 있고, 남자도 식사준비를 할 수 있다.
단지 성 차별로 인한 일의 분배가 아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일을 분배한다는 요지였다. 지금 이 시대, 21세기에서는 이런 일은 당연히 여기고 의문할 가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아직도 종종 본다.
그때 나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가장 혐오했던 말이 순종이었다. 2000여 년 전, 각 지역에 사는 성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편지를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 중에 에베소 지역에 보낸 편지가 있다. 그 편지에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사도 바울이 썼고, 그리고 그 편지가 당당히 신약 성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에 나는 결혼 후 한 동안 그 말의 올무에 묶여 마음을 누르고 친구들에게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다’라는 시대를 비껴가는 말을 하여 친구들을 당황시켰다. 친구들은 언젠가는 폭발할 나를 알았던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였다. 한국에서 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사회생활까지 한 후에 워싱턴에 온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청년을 소개 받았을 때 이미 그것은 예고된 시나리오였건만 청춘 남녀의 눈에는 그 때 콩 껍질이 씌어 간과 되었을 뿐이었다.
그 동안 몇 번의 폭발은 결국 불발탄으로 끝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말과 친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도 미셸 바크만처럼 ‘상호간의 존경(mutual respect)’로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대방을 존경한다면 서로 기꺼이 순종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일로 미국 사회가 민감하게 대응하는 단어들 - 인종 차별, 편견, 동성애 등 외에 ‘순종’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들에게 부인에게 순종하라고 하였어도 이렇게 의견이 분분할까? 만약 그렇다면 순종이란 단어는 이참에 없어져야 할 것이고, 만약 남편들이 즐거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면 여자의 자격지심을 의심해 봄이 어떨지.
평생을 독신자로 살며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만약 21세기 미국에 사는 부부들에게 특별히 편지를 쓴다면 아마도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까. “부부들이여 서로 존경하라!” 그러면 아마 나는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아멘!’ 하였을 것이다, 기꺼이.
박현숙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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