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년간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범 이슬람교운동(무자히딘)이 싹트다
오사마 빈라덴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분쟁(1978년~1989년)에서 파생적으로 생긴 이슬람교를 기반으로 하는 테러조직이다. 아프가니스탄은 8세기에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이슬람교가 토착화되어 현재는 이슬람교인이 99%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는 이슬람교도가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면 사형을 한다는 법이 있었는데, 2006년에 국제여론 등의 영향을 받아 그 법은 철회 되었다. 1747년에 ‘아프간인’에 의한 왕조가 생기기 이전에는 이란인의 왕조, 한때는 몽고족의 왕조가 나라를 지배했다.
1973년까지 절대군주제 국가였으나 동년 군사 쿠데타로 왕정은 무너지고 군벌에 의해서 공화제 국가로 국가의 체제가 바뀌었다. 1978년에는 공산당을 배경으로 하는 군사 쿠데타로 공산계 군부가 집권하게 됨에 이슬람 정치권에서 반기를 들게 되어 ‘아프가니스탄 분쟁(1978년~1989년)’이 터지면서 국가의 질서가 무너지고 공산세력이 몰리게 되자 1979년에는 드디어 소련이 군사개입을 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이슬람세력의 테러활동은 여기서 크게 탄력을 얻게 된다. 소련군 주둔 기간 중(1978년~1989년) 소련국과 아프가니스탄 의용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무려 150만 명, 전란을 피해서 국외로 피난나간 민간인수는 600만을 헤아린다.
1984년에 파키스탄을 근거로 ‘범 이슬람교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아부둘라 아잠(Abdullah Yusuf Azzam)’이라는 팔레스타인 출신 신학자의 불음으로 오사마 빈라덴이 그 운동에 동참하였다. ‘아잠’이라는 사람은 한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학교수생활을 하였는데, 오사마 빈라덴의 은사였다. 사우디에서 이슬람 과격파를 경계하기 시작하자 ‘아잠’은 파키스탄으로 이동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을 국외로 내모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반 소련’운동과 범이슬람 운동의 동반자로 오사마 빈라덴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소련군과 좌익세력을 격퇴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에게 호소를 하여 지원병을 모아들였다. 이러한 범(汎)무슬림교 운동의 동참자를 ‘무자히딘(Mujahidin)’이라고 하는데 ‘의용병’이라는 뜻이다. 1980년에 ‘아잠’은 이들을 소집하고 훈련하는 기관으로 “MKA(Makatabal-Khidamat)”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한창 때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무자히딘’의 수가 35,000명 정도 였다고 한다.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총정보부’의 자금과 미국CIA, 파키스탄 정보부, 빈라덴의 사재로 운영을 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에 훈련 기지를 두고 소련군에 대한 타격을 주기 위한 테러 활동에 몰두하였다. 1988년에는 무자히딘들은 알카에다를 조직하고 빈라덴을 두목으로 추대하였다.
1989년에 소련군은 모두(100,000명)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아잠’과 ‘빈라덴’사이에 MAK의 기본 운영방침에 대해 의견대립이 노출 되었다. ‘아잠’은 소련군 철수 후 발생한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정치단체간의 내전에 개입해서 사태수습을 하자는 주장을 갖고 있었으나, 빈라덴은 ‘무자히딘”의 활동 무대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여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한 와중인 1989년 11월24일 ‘아잠’은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서 암살되었다. 이리하여 알카에다의 빈라덴은 MAK조직까지 흡수하여 조직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빈라덴은 아라비아의 영웅으로서 본국인 사우디아라비아로 금위 환향하였다.
1991년에는 걸프전쟁(Gulf War)이 터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빈라덴을 비롯하여 각국에 산재해 있던 ‘무자히딘’들은 무슬림 성지인 멕카와 메디나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였으며 그들의 반미감정은 더욱 고조 되었다. 1992년 빈라덴은 ‘수단’에서 활동 중인 ‘민족이슬람전선’이라는 테러조직의 초청으로 사우디를 빠져나와 수단으로 이동을 하여 현지에서 알카에다조직을 더욱 강화하였다. 미국에서는 수단으로 하여금 오사마빈라덴의 테러조직을 국외로 추방 할 것을 종용하여 1996년 빈라덴은 거점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겼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Taliban)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빈라덴의 알카에다는 이들과 손을 잡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훈련을 계속하게 되었다. ‘탈레반’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이 후퇴(1989년)를 하고난 후에 생긴 불티나는 치열한 국내정권다툼에서 태어난 ‘이슬람주의운동’을 표방하는 정치단체(및 체제)로서 1996년부터 2001년 11월경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고 있었다. 탈레반의 창립자며 최고 지도자는 ‘무함마드 오말’이라는 사람이며, 1994년에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역에서 이슬람주의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다.
탈레반은 빈라덴의 은신을 도와주고 협조하던 세력이다. 국제연합에서는 안보이사회결의 1267호에 의하여 1998년 키니아와 탄자니아의 미국대사관 폭파의 주모자인 빈라덴을 국제사법기관에 인도(引渡)하라고 하였으나 거부하였고, 예멘의 아덴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구축함 USS Cole의 자폭공격사건의 책임을 물어 빈라덴을 국제재판소에 인도하라고 하였으나 역시 거부하였다. (안보이사회결의 1333호) 199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군기지폭파사건을 주도하였다. 2001년 9.11사건후도 탈레반 정권에게 주모자인 빈라덴과 알카에다 요원을 인도해 달라는 미국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테러조직을 비호하는 정권으로서 자멸을 재촉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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