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한국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스패니쉬보다 더 두려운걸요.” 얼마 전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하면서 나누던 대화 중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 더해서 이민교회에 가도 너무 무서운 사람들 투성이라고 손을 설레설레 흔든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그렇잖아도 살기 어려운 이때 미국에 와서 함께 힘을 합치고 격려하며 도와주며 가장 가까이 하고픈 사이가 되어야 하는데, 어쩌다가 이곳까지 와서 한국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까지 듣고 해야 하나, 참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를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학생의 말에 나 역시 어느 정도 순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 생활 15년 그리고 이민교회 사역을 10여년 하다 보니 한국 사람이 가장 무섭게 느껴진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 동안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 버지니아주의 리치몬드,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그리고 콜로라도의 덴버.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갈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걱정하는 말투로 “그 도시에 사는 한인들 조심하세요. 이민 사회에서도 악하고 센 곳으로 아주 유명하지요”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한국 사람이 가장 무서워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그 학생이나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나는 학생들이나 지인들을 통해서 같은 한인으로부터 영주권 사기 당한 사례, 극빈자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는 고약한 한인 고용주 사례 등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듣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계층’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살면서 그 안에 속하지 못한 한인들을 마치 ‘이류집단’으로 여기며 무시하고 급기야 ‘무서운’ 사람으로 등장한다. 과연 이 미국 땅 한인들이 사는 곳 중에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저기 미국 지도의 최 북쪽 혹은 서쪽이나 동쪽, 아주 작아서 보일락 말락해서 한인 인구라고 해 봐야 겨우 30여명 안팎 모여 사는 곳일까. 글쎄, 그곳에서는 정말 한인들끼리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이리도 한인들이 한인들을 못살게 굴까? 예전에는 같은 한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일부러라도 말을 걸고 집으로 초대해서 김치 먹고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교회가고 했다는 전설이 왜 지금은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일까? 물론, 많은 이유가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는데 주로 한인들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민자로서의 한계적인 경계상황을 들 수 있겠다.
사회적으로는 이민개척자들과는 달리 요즘 이민 오거나 미국에서 유학이나 주재원으로 온 후 주저앉은 젊은 사람들은 이민 개척자들과는 달리 이미 숫자적으로 많이 증가된 이민사회에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편입되다 보니 한인이나 문화에 대한 향수가 덜하고 자기목적 성취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기에 보다 이기적이 되기 쉽다는 이유도 있겠다. 여기다가 예전과는 달리 미국 사람들이 이민자들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과 갈수록 강화되는 이민정책이 ‘무서운 한국인’ 증후군에 분명 한몫 거든다고 하겠다.
그런데, 위의 이유들에 더해서 기독교 상담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인 이민자들의 정신적, 심리적, 영적 상태가 그리 건강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를 더욱 무서운 상대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더욱 더 불행한 것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한인 사회의 미래가 더 암울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남편이 딸과 아내를 칼로 찌른다. 사랑했던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70세 할머니가 80세 남편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못살겠다고,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나선다. 이것저것 울화통에 집을 불태운다.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멀쩡한 가족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 여자 저 여자 사방으로 기웃거린다. 수려한 감언이설로 어수룩해 보이는 이민초보들의 등을 쳐, 그들이 온갖 고생해 모은 이민자금을 강탈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인 이민사회의 한 단면이다. 물론 긍정적이고 좋은 모습들도 많이 있다. 허나, 필자는 상담칼럼을 통해서 상담학자이자 상담가로서 우리 이민사회의 무섭고 날카로운 발톱과 슬픈 자화상들을 드러내 보임으로 조금이라도 상처, 고통, 절망, 죽음의 그림자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삶의 회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무지무지하게 행복할 것이다. 역시 같은 한인이 최고야 하는 날, 참으로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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