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간 1인 독재자로 리비아에 군림하던 카다피 대통령이 리비아 임시 정부 혁명군에게 쫓기다가 자신의 고향 시르테 시의 하수구에 숨었다가 발견되어 사살된 대사건이 당일에 보도되지 않은 나라가 세상에 딱 하나 있다. 그게 바로 북한이다. 2006년에 이라크의 전 대통령 후세인이 사형당한 뉴스가 북한에서는 18일 만에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에 간단히 보도된 전례로 본다면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도 북한 인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한 다음에야 간단히 취급될 가능성이 있다.
김일성 왕조가 출발한 1945년부터 장장 66년이나 북한을 세습으로 지배해온 김정일과 그의 체제에게 독재자의 수명을 못 채운 종말은 금기시되는 제목일 것이다. 더군다나 1942년은 김정일과 카다피의 출생년도일 뿐 아니라 예멘에서의 대규모 데모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를 겪고 있는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도 동갑내기인 것이 마음에 걸릴 만도 하다.
특히 루마니아의 공산 독재자 챠우세스쿠가 1989년에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다가 죽음을 무릅쓴 데모 군중들에 의해 평양의 인민 궁전을 본 따 지었다는 대통령궁이 함락되고 도망갔다가 부인과 함께 체포된 직후 약식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자 마자 수백 발의 총탄을 맞아 최후를 맞은 사건은 이미 22년이 지났어도 김정일의 뇌리에 생생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챠우세스쿠가 김일성과 거의 동년배의 절친한 친구로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다음 김일성의 김정일 세습 작업에 감동되어 자기 부인과 아들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등 김일성 왕조 확립의 모델을 따르다가 변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좌우지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의 10월20일자 머리기사는 카다피의 최후가 아니라 조선 중앙통신의 보도로 ‘김정일 총비서 로씨아 아무르주 장관 일행을 접견’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그 기사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조선 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일행을 접견하시었다.” 소위 신문 기사에서 조차 유일한 지도자에게는 위대한이란 형용사가 앞서고 그가 하는 모든 언행에는 존댓말이 뒤따르는 나라치고 인권이나 시민들의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신격화(personality cult)된 것을 답습하여 김일성이 신의 반열에 올랐기에 남한의 종북사상을 가진 자들이 평양엘 가면 그의 성전에 경건한(?) 자세로 참배하는 게 첫 번째 하는 일일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다녀가신 건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다녀가신 건물”,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께서 다녀가신 선군 주철공장” 이라는 현판들이 이곳저곳에 붙어있다니까 정말 가소롭고 가증한 희극인 동시에 북한 인민들에게는 안타까운 비극이다. 27세의 약관(弱冠)으로 대장 자리에 오른 김정은은 특수부대 사령관이었다가 아버지와 함께 살해된 무타심 카다피의 경력을 연상시킨다.
김정일 독재 아래에서는 독립된 언론기관도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신문, 방송, 통신 매체는 노동당의 선동선전국(agitprop)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뉴스 보도는 김일성 체제 유지를 지상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제도인 북한의 현 제도 아래에는 흔히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당연시 하는 언론, 결사, 종교의 자유가 조금도 존재할 수 없다. 북한의 모든 미디어는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일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에 위대한 수령이나 영도자가 왕림하셨던 자리마저 신성시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비판이나 욕설은 신성 모독죄 정도로 여겨진다.
참고로 로동신문의 10월18일자 사설 “재집권을 위한 단말마적 발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한다. “남조선을 민주와 인권의 처참한 폐허로, 인민 대중의 생지옥으로 만들고 북남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보수패당에 대한 인민들의 원한과 분노는 하늘에 닿고 있다” ‘인민 대중의 생지옥’에서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들과 자동차들이 수출된다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민주와 인권의 처참한 폐허’라는 곳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부정부패가 연일 대서특필되는 현상은 또 무엇인가? 북한 미디어의 현실은 소련 공산당 기관지였던 프라우다(진리)에는 진리가 없고 소련 정부 기관지였던 이즈베스챠(뉴스)에는 뉴스가 없다는 명언을 상기시킨다. 그래도 북한을 찬양하는 종북주의자들이 있다는 게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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