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전쟁의 도화선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끌던 `알카에다`조직
1956년10월에는 이집트에서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을 하자 이스라엘과 영국, 불란서가 연합해서 이집트를 기습공격 하였다. 제2차 중동 전쟁이다.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여 삼개국 연합군은 철수를 하게 되고 1957년5월에 종전이 되었다.
다음의 제3차 중동전쟁을 ‘6일간 전쟁’이라고 한다. 1967년 6월5일부터 6월10일까지 6일 동안 싸운 전쟁이라는 뜻이다. 1967년 초반에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편들어 이스라엘에 포격을 가한 일이 있는데, 즉각적으로 취한 이스라엘군의 보복 반격으로 사태는 수습이 되었는데도 현지에 나가 있던 소련의 KGB(소련 정보부)가 이집트에게 이스라엘하고 시리아가 전쟁을 시작하였다고 충동적인 허위정보를 제공하였다.
소련은 중동에서 전쟁이 있어야 입지가 유리해짐으로 싸움을 붙이는 활동을 해 왔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개전(허위)정보를 소련 KGB로부터 입수한 이집트에서는 즉각적으로 전시태세에 들어갔다. KGB의 음모를 감지하지 못한 채 이집트의 전시체제 돌입상황을 탐지한 이스라엘은 1967년6월5일에 재빨리 선제 강타 작전으로 시나이반도를 점유하고 이집트의 본토를 위협하였다. 이에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편에 가세를 하였으나 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반도를 점유하게 되고, UN구획 안에 의해서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되어 있었지만 1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공격 점유한 ‘가자(Gaza)’지역을 탈환하였다. 가자지역은 팔레스타인이 영국신탁통치하에 있을 때인 1929년에 아랍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유태인의 거주를 거부하였음으로 아랍인으로만 점유되어 있던 곳이다. 그러함으로 1947년 UN 팔레스타인 분할 때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되게 된 것이다. 1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6일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유태인의 입주를 허가를 하였으며 ‘가자’의 통치권을 주장을 하였으나 아랍제국가와 국제사회의 반대로 이스라엘 ‘점령지구’로 인정하게 됐다. 결국 1994년 ‘파레스타인 자치구’로 발족하게 되면서 유태인들도 대부분 철거하였다.
1964년에는 시리아의 암만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로서 속칭 PLO가 조직이 되어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태인을 제외한 아랍인의 총칭)의 민족자결권 또는 2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인접 아랍국가로 피난 간 팔레스타인 피난민의 귀환권 등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는 반유태주의를 내걸고 이스라엘을 배후에서 무장투쟁으로 멸망케 한다고 나선 기구이다. 이 사람들은 주로 테러활동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하였으므로 PLO는 한때 ‘무슬림 테러집단’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1980년대에는 방침을 이스라엘과 공존으로 바꿈)
1973년 10월6일에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합동 작전으로 제4차 중동전쟁이 터졌다. (후일 요르단과 이라크가 합세) 이집트의 사닷 대통령은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점령당한 시나이반도(1967년)를 탈환하겠다는 목적과, 국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하고 나아가서는 이스라엘과 대등한 입장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그간 여러 차례 전쟁으로 낙후된 국내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심산으로 소련의 협조 등으로 전력을 강화하였는데, 이스라엘인들의 최대축일인 Yom Kippur일(사죄의 날)인 10월6일을 택해서 기습을 감행하였다. 기습의 목적대로 초전에서 이집트는 크게 성과를 올렸으나 미국 등으로부터 결정적인 협조를 받은 이스라엘은 대거 반격에 나서 전세가 역전하면서 전선이 정체상태에 빠지고 장기화될 징후가 농후해 지자 미국과 소련이 나서서 정전을 성사시켰다. 개전 19일만인 1973년10월25일에 종전되었다. 이 전쟁을 일명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부터 불과 25년 사이에 4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아랍국가 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이 연쇄적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승자이고 아랍제국가는 패자로 끝나곤 하였는데, 아랍에서는 이스라엘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중동 분쟁은 결과적으로 중동 아랍제국가의 국민들에게 은근히 반미감정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 극단적인 반미 활동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테러조직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이끌던 알카에다(al-Quaeda)조직이다. 알카에다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밀접한 우방으로서 아랍 국가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믿었고, 또한 1990년의 걸프전쟁(Gulf War)때 ‘멕카’와 ‘메디나’라는 이슬람 성지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이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이유로 미국을 적대시하고 테러 대상국가로 정하고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은 바로 이 무리가 도화선이 된 것이다.
알카에다의 대미(對美)테러 행위는 2001년의 9.11 동시다발 테러사건으로 대표된다. 이 이전에 알카에다는 이미 아프리카의 2개 나라에서 현지 미국 대사관을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1998년 8월7일 아프리카 Kenya 수도인 Nairobi에 소재하는 미국대사관에 화약을 만재한 트럭으로 자폭하여 대사관 직원과 민간인 291명이 사망하였고 5,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역시 동일, 같은 시각에 아프리카 Tanzania수도 Dar es Salaam에 소재하는 미국 대사관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내습한 차량 폭탄테러로 10명의 사망자와 77명의 부상자를 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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